작년과 올해는 첫 집 매매와 인테리어, 그리고 아버님의 투병과 장례까지 겹쳐 다사다난했다. 그러다 보니 취미생활을 즐길 여력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만년필, 독서와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올해 완독한 책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반성하는 지점이다.) 그러다가 10월부터 12월까지 그간 꾹 눌러왔던 물욕이 폭발했다.
그래서 사실 제목에는 2025년 득펜기라고 적었지만, 2025년 10월~12월의 득펜기라고 해야 정확하다. (그래요, 3개월 만에 무려 이만큼이나 산거랍니다..) 하나씩 짧게 소개하며 나만의 실사용 후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 라미 사파리 2023년 한정 스프링 그린 (EF)
⭐️⭐️
잠잠하던 나의 취미 생활에 다시 불을 붙여준 펜. 처음에는 2026년 다이어리를 사려고 기웃거리다, 다이어리 판매처에서 이 제품을 특가로 1만 원대에 파는 것을 보고 고민 없이 구매했다. 이미 라미 사파리는 두 자루나 가지고 있었지만, 사파리는 다다익선이니까. 이번에 구매한 모델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검은색 닙과는 달리 은색 닙이었는데 같은 사파리임에도 필감이 달라서 신기했다. 참고로 은색 닙은 수성펜과 비슷한 필감이다. 잉크도 좀 더 콸콸 두껍게 나온다.
🖋️ 펠리칸 M200 오렌지 딜라이트 (M)
⭐️⭐️
사파리, 트위스비와 더불어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는 모델 중 하나다. 번개장터에서 중고로 구매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검은색 EF촉과 비교하면 M촉은 확실히 부드럽지만, 살짝 뭉툭한 느낌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EF촉이 더 취향이다. (펠리칸은 개체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펠리칸 M670 웜그레이 (EF)
⭐️⭐️⭐️⭐️
펠리칸 M200과 함께 같은 판매자분께 중고로 구매했다. 전 판매자분께서 잉크를 충전하고 오래 방치해서 그런지 착색이 있어 세척하느라 혼났다. 그래도 처음 써봤을 때 필감이 정말 부드러워 놀랐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얇은 사인펜을 쓰는 느낌이다. 이래서 다들 조류독감에 걸리는구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 카키모리 딥펜 펜촉 (일반/황동)
⭐️⭐
카키모리 스테인리스 펜촉이 있는데 황동의 필감이 궁금해 구매했다. 충동구매였고, 만년필 대비 자주 쓰지 않게 되어 처분할까 고민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거둬들이기도 했다. 아이랑 펄잉크로 그림 그리며 놀이할 때 가끔 꺼내 쓴다.
🖋️ 에스터브룩 에스티 누보 블루 (저널러)
⭐️⭐️⭐️⭐️⭐️
10월 말에 있었던 사각사각 펜페스트에서 구매했다. 원래는 펜페스트에서 파이롯트 845 또는 펠리칸 M800 중 하나를 구매할 생각으로 갔는데, 생뚱맞게 에스터브룩 저널러닙을 들여왔다. Gena Salorino라는 닙 마에스터가 요보 6호 닙을 가공한 닙인데, 필감도 좋고 글씨도 반듯반듯하게 써진다. 이 구매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특수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트위스비 에코 브론즈 인디고 블루 (M)
⭐️⭐️⭐️
이것도 에스터브룩과 함께 사각사각 펜페스트에서 구매했다. 믿고 쓰는 트위스비 에코. 브론즈, 로즈골드, 오닉스 모델이 아닌 쪽이 더 저렴하지만, Made in Taiwan이 좋아서 조금 더 주고 샀다. (참고로 이 세 모델을 제외한 기본 모델은 Made in China 다) 이로써 트위스비 에코 모델은 EF닙과 M닙을 가지게 되었는데 (참고로 원래 가지고 있던 B닙은 너무 굵어서 방출했다) F닙도 하나쯤 있으면 든든할 것 같다.
🖋️ 홍디안 N7 (EF)
⭐️⭐️⭐️⭐️
3만 원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가성비템이다. 중국 만년필은 처음 구매해 봤는데 처음 썼을 때 필감이 너무 좋아서 현타가 왔다. 앞으로 비싼 돈 주고 일제나 유럽 만년필을 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의 감동은 스레드에 따로 적어두었다.
🖋️ 라미 2000 (F)
⭐️⭐️⭐️
중급기 중에 가장 대중적인 모델이라 늘 관심은 있었지만 만년필 취미 휴지기(?) 사이에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가 이번에 29CM 행사 기간에 할인가로 20만원대에 구매했다. 흔히들 말하는 버터필감의 대표 명사. 하지만 내 취향은 살짝 벗어나는 것으로. 나는 사각사각한 만년필을 좋아하는구나 라는 확신을 준 펜이라고 할 수 있겠다.
🖋️ 파이롯트 캡리스 데시모 샴페인 핑크 (F)
⭐️⭐️
연초 포인트오브뷰에서 주관하는 인벤타리오 행사에서 시필해보고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좋았던 F닙이 품절이라 당시에는 지갑을 지켰다. 그러다 결국 중고나라에서 새 상품에 가까운 상품을 구매했다. 근데 막상 실사용해보니 닙이 너무 작고 배럴이 너무 가늘어서 손이 자주 가지 않는다.
🖋️ 무지 폴리카보네이트 만년필 (EF)
⭐️⭐️⭐️
필통에 넣고 항상 넣어 가지고 다니는 펜이라 위의 사진엔 없다. 무지 세일 때 구매했다. 일본 매장에는 온고잉으로 있었는데 한국 무지에는 최근에 들어온 것으로 안다. 필감은 무난하고, 무지만의 미니멀한 디자인이 꽤 마음에 든다. 카트리지 잉크가 꽤 진한 편인지 만년필을 잘 받는 종이로 알려진 미도리 노트에서도 뒷비침이 있다.
🖋️ 오로라 탈렌튬 크롭캡 라이트 블루 (F)
⭐️⭐️⭐️⭐️⭐️
중고나라에서 구매. 나의 최애 만년필이자 첫 오로라 만년필은 오로라 88인데, 그 이후에도 오로라 탈렌튬 보르도와 오로라 입실론 디럭스 모델을 추가로 들였지만 욕심에 하나 더 구매했다. 오로라 88과 탈렌튬 모델은 동일한 14K 인하우스 닙을 쓰지만 수제라 필감이 다 다르다. 이번에 데려온 모델은 마치 스케이트를 타는 것 같은 날렵한 부드러움이 있어서 기존 오로라와는 또 다른 경험을 주었다. 이것도 아주 마음에 든다.
🖋️ 레오나르도 모멘토제로 누볼라 라일락 (M)
⭐️⭐️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에 레오나르도 국내 공식수입사인 펜사랑에서 구매했는데 처음 받았을 때부터 닙이 이상했다. 펜사랑 측에 한 번 수리를 보냈음에도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이상해져서 (닙 교체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펜사랑 측의 대처 방식에 대해서는 할많하않..) 결국 문방삼우 네이버 카페 회원님들의 조언을 듣고 얼마 전 베스트펜 x 시시리상 수리 이벤트를 통해 2차 수리를 맡겨서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완벽히 만족할 필감은 아니다. 배럴 색과 딱 맞지만 흐름이 박하다고 소문난 세일러 만요 네코나야기 잉크를 넣어 쓰고 있는데, 다음엔 조금 더 흐름 좋은 잉크를 넣어볼까 싶다.
🖋️ 라디우스 세티모 마르모 비앙코 (F)
⭐️⭐️⭐️⭐️
레오나르도와 함께 펜사랑에서 구입한 만년필. 배럴 디자인만 보고 구매했다. 레오나르도가 인수한 회사라 동일한 요보 6호닙을 쓰는데 다행히 양품을 받았고 필감이 괜찮았다. 제이허빈 잉크를 넣어 쓰고 있는데 잉크의 농담 표현이 잘 되어서 좋다.
🖋️ 라미 사파리 14K 금촉
⭐️⭐️⭐️⭐️⭐️
라미 사파이의 재발견. 기존에 쓰던 라미 사파리에 촉만 바꿨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펜이 되었다. 촉 가격만 보면 비싸게 느껴질 수 있지만, 금촉 만년필을 이 가격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최강의 가성비라고 생각한다. 다른 금촉 만년필들은 애지중지하느라 집에서만 모셔놓고 쓰고 있는데, 이건 사파리라 부담없이 필통에 넣고 다니며 일상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펜 중 하나가 되었다.
취미생활 초기에 만년필이 빠르게 증식해 3자루가 10자루가 되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포스트), 지난 몇 달은 그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만년필 수가 늘어났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 말 기준, 이 펜들이 올해의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지만 지금 두 자루 (트래블러스 컴퍼니 만년필, 오마스 오기바 엑스트라 빈티지 만년필)가 더 우리 집으로 오는 중이다.
돌아보면 이 득펜기는 단순한 소비 기록이라기보다, 다시 취미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이었다. 한동안 멀어졌던 손글씨와 잉크, 종이를 다시 일상으로 불러오는 시간. 예전에는 별 관심이 없던 특수촉이나 빈티지 모델 같은 것도 경험하고 싶어졌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취미를 대하는 나의 자세나 이해도 조금은 더 깊어진 것 같다.
내년에는 덜 사고, 더 쓰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상편 > 문구인 헤더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년 다이어리 셋업 + 내지 소개 (0) | 2026.01.04 |
|---|---|
| 3개월만에 만년필이 3자루에서 10자루로 증식했다. (0) | 2024.01.31 |
| 만년필 세계 입문기 (feat. 라미 사파리, 트위스비 에코, 펠리칸 M200) (3) | 2023.10.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