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가 되기 전, 오랜 시간 서칭하며 준비해 두는 것이 있다. 바로 연간 다이어리.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다이어리를 써온 나에게 다음 1년 동안 함께 할 다이어리를 고르는 일은 그저 쇼핑이라기보다 일종의 의식에 가까운 이벤트다.
2025년에는 유난히 지지부진했던 한 해였다. 뭔가를 제대로 해냈다고 말하기 어렵고, 손에 잡히는 성취도 흐릿했던 해. 그래서 올해는 다시 내 삶의 주도권을 잡고, 조금 더 생산하는 방향으로 일상을 설계해보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작년 9월 즈음부터 다이어리 셋업을 열심히 고심했다. 이제는 만년필을 주 필기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만년필을 받는 종이들로만 구성했다.
To-do 및 일정 관리: 로디아 위클리 (A5)



일정 관리는 작년부터 TickTick 이라는 어플을 사용하고 있다. TickTick의 가장 큰 장점은 To-do를 생성하는 즉시, 실제 일정으로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기능처럼 보이지만, 생각이 "해야지"에 머무르지 않고, 캘린더 위에 '시간'으로 착지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은 꽤나 강력하다. (요즘에는 애플 기본 캘린더도 '미리 알림'과 연동되어 비슷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매일의 To-do를 한눈에 살펴보고, 새로운 할 일을 적고, 완료할 때마다 체크하는 이 직관적인 시스템에 때로는 아날로그 방식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올해는 TickTick과 로디아 위클리 다이어리를 병행해 사용할 예정이다.
로디아 위클리는 왼쪽 페이지에 7일이 칸으로 나뉘어 있다. 각 칸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 표시(가로로 6개, 세로로 3개씩)가 있는데, 그 활용도가 무궁구진 하지만, 나는 심플하게 왼쪽에는 개인, 오른쪽에는 회사 관련 To-do를 분리하여 적고 있다. 각 장의 오른쪽 페이지는 캘린더와 모눈 형식의 무지 노트인데, To-do 보다 조금 더 맥락이 필요한 글들을 적는다. 예를 들면, 왼쪽 페이지 To-do 리스트에 "Figma 강의 듣기"라고 적는다면, 오른쪽 페이지에는 Figma 강의를 매일 얼마씩 들어서, 언제까지 진도를 다 빼야 설정해 둔 기한 내 완료할 수 있는지를 적어보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이 다이어리의 귀여운 포인트. 모서리 귀퉁이가 뜯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한 주, 혹은 한 달이 끝날 때 그걸 뜯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후기들을 보면 호불호가 갈리는 포인트인 것 같은데, 다행히 나에게는 호다)
모닝페이지: 물든 그라필로 노트 (A5) + 포인트오브뷰 가죽 커버

요가를 가는 날은 아침 5시 반에 알람을 맞춰 놓고 일어난다. (올해는 요가를 가는 날 뿐만 아니라 매일 일찍 일어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유산균과 오메가를 입 안에 털어 넣은 뒤, 책상에 앉아 모닝 페이지를 쓴다. 모닝페이지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드는 생각을 가감 없이 적는다. 잘 쓴 문장이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생각을 종이 위로 옮겨두면 신기하게도 하루가 덜 엉키는 느낌이다.
이 전에 모닝페이지로 썼던 미도리 MD노트를 한 권 다 채우고 물든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잉크잉크님이 만드신 브랜드)의 그라필로 노트를 개시했다. 여기에 작년 초에 사이즈별로 사두었던 포인트오브뷰의 가죽 커버(A5)를 씌웠는데 가죽 커버의 쓰임새를 찾아 기쁘다. 그라필로 노트는 만년필 전용 노트답게 지금까지 써본 모든 노트들 중 필감이 가장 만족스럽다. "부드러운데 사각이다"는 표현을 이 노트를 통해 진정으로 이해했다. 제일 부담 없이 쓰고 있는 나의 아무말 노트다.
감사일기: 호보니치 5년 다이어리 (A5)


5년 일기장이라는 컨셉은 예전부터 흥미롭게 여기고 있었지만, 1년의 다이어리도 다 못 채우는 경우가 허다한 내가 과연 5년 동안 다이어리를 꾸준히 쓸 수 있을까 라는 자기 의심에 선뜻 구매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부터 5년 일기를 시작하면 2030년에 딱 맞춰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5년 일기를 시작하게 된다면 올해가 가장 적당한 타이밍일 것 같다는 생각에 구매했다. (그렇다, 지금까지 충동구매였다는 사실을 아주 길고 정성스럽게 적었다)
구성은 앞서 소개한 로디아 다이어리와 비슷하다. 왼쪽 페이지에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해당 일의 일기를 적을 수 있게 칸이 나뉘어 있고, 오른쪽 페이지는 자유 노트다. 5년 일기의 묘미는 같은 날짜의 기록이 층층이 쌓이면서 변화를 한 페이지로 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예전에 노션으로 정리하다가 흐지부지 끝나버린 감사일기(관련 포스트) 를 여기에 써보고 있다. 호보니치 5년 다이어리는 A5와 A6 사이즈가 있는데, 좀 더 큰 A5 사이즈로 선택하길 잘한 것 같다.
생각 정리, 일상 기록: 트래블러스 오리지널


트래블러스 노트에 이렇게 빠질 생각은 없었는데, 다양한 유튜브 영상들을 보다가 완전히 꽂혀버렸다. 한국에서도 정식 판매처가 있지만 기본 만 원 이상씩 비싸서 일마존을 통해 직구했다. 오리지널보다 패스포트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은 것 같은데, 나는 둘 다 써본 적이 없어서 둘 다 주문했다. 오리지널이 먼저 도착했고, 오리지널을 셋업해서 쓴 지도 벌써 한 달쯤 되었다.
트래블러스 노트의 가장 장점은 내 취향과 목적대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나는 일단 기본 속지에 추가로 구매한 리필 속지를 하나 더 끼워서 두 개의 속지를 넣어 사용 중이다.(참고로 처음 셋업할 때는 커넥팅 밴드, 리필 키트, 지퍼 케이스, 브라스 클립까지 함께 사느라...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현상을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두 개의 속지는 ‘인풋’과 ‘아웃풋’으로 구분해, 앞에 끼워둔 속지에는 내가 평소애 생각하고 기획한 것들 (아웃풋), 그리고 뒤쪽 속지에는 내가 경험한 것들, 보고 들은 것들 (인풋) 을 주로 기록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To-do 리스트, 모닝페이지, 감사일기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일상의 단조롭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최대한 놓치지 않기 위한 노트라고 보면 된다.
영감 노트: 트래블러스 패스포트


트래블러스 노트 오리지널과 함께 주문한 패스포트 사이즈 카멜이 두 달이 넘도록 아직 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결국 못 기다리고 일마존에서 패스포트 브라운을 따로 하나 더 주문했고, 얼마 전 도착했다. 앞서 소개한 노트들만 봐도 나는 확실히 큰 노트를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큰 노트들은 기동성이 떨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그런 점에서 트래블러스 노트 패스포트 사이즈는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컴팩트해서 데일리로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 좋다. 어디든 들고 다니려면 달력은 있는 게 편한 것 같아 만년형 먼슬리 리필을 함께 구매했고, 먼슬리 리필 1개, 일반 노트 (라인, 무지) 2개, 총 3개를 끼워 셋업해 두었다. 이 노트야 말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돌아다니며 드는 생각들, 순간의 아이디어들, 적지 않으면 금방 휘발되어 버릴 것 같은 것들을 붙잡아두는 용도로 사용할 예정이다. 그래서 트래블러스 오리지널에는 굳이 붙이지 않았지만, 패스포트에만 펜 홀더와 황동 만년필도 함께 구매해 끼워두었다.
필사 노트: 필로그램 비세븐 노트

2023년, <결혼, 여름> 필사를 시작했지만 (관련 포스트), 이런저런 일들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꽤 오랫동안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 그러다 요즘 막판 스퍼트로 다시 열심히 옮겨 적는 중이다. 아마 이번 주 내로 책 한 권 필사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사는 좋아하는 책을 한 문장씩 온전히 내 손으로 옮겨 적는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내가 가진 다양한 만년필과 잉크를 제대로 테스트해 보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취미다. 이번 <결혼, 여름> 필사는 예전에 유튜버 필로그램님께서 펀딩으로 제작하셨던 비세븐 노트에 하고 있다. 비세븐 노트뿐 아니라 이후에 펀딩을 진행하신 문켄 노트들도 꽤 많이 쟁여두고 있어서, 이번 필사가 끝나면 다음 노트들도 차근차근 개시해 볼 생각이다.
이 외에도 올해는 일본어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그에 맞는 노트도 하나 마련할 생각이다. 그리고 예전에 포인트오브뷰에서 함께 사두었던 A6, A7 사이즈 가죽 커버도 사이즈에 맞는 노트만 끼워둔 채 아직은 딱 맞는 용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노트가 기록의 목적이 되어버리면, 정작 기록은 멀어지니까. 일단 이렇게 써보면서 필요에 맞게 조금씩 맞추고 조정해 나가면 되겠지. 완벽한 셋업보다 중요한 건 꾸준히 펼치는 일일 테니까.
2026년의 나도, 그리고 우리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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