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편/평범한 일상의 특별한 기록 ✨

시아버지를 떠나보내며

by 헤더씨 2025. 10. 31.

   지난주는 시아버지의 49재였다. 장례 이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러있었다. 아버님이 처음 췌장암 판정을 받으신 건 작년 4월이었다. 그리고 1년 4개월간 수술과 항암 치료를 이어가시다 결국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나셨다. 우리 가족의 시간도 작년 4월을 기점으로 멈춘 듯했다. 슬프고, 또 기약 없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이별의 날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항암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3개월의 시한부 선고가 한 달로, 다시 2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번 주를 넘기기 어려울 것 같으니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와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버님을 보냈다.

아버님은 수목장으로 모셨다. 그곳에서는 부디 편안하시길.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양가 할아버지는 내가 비교적 어릴 때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미국 유학 중에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가보지 못했다), 상주의 아내로서 장례식과 그에 수반되는 모든 절차를 오롯이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시간으로 위급해지는 상황을 전달받는 것도, 임종하시기 전 꺼져가는 불씨와도 같던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을 뵌 것도, 상복을 입고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드린 것도, 입관식에 들어간 것도, 화장 후 유골을 뵈러 들어간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현실감이 없었던 것인지 장례식장에서 나는 많이 울었다. 그 이후에도 집에서 종종 울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눈물 버튼은 아버님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슬픔 그 자체보다는 본인의 아버지와 남편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남편과 시누이, 시어머님이 느끼실 슬픔에 대한 감정이입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일례로 며칠 전 시누이가 대학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어머님께 전하며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나도 눈물이 주르륵 났다. 아버님께 가장 먼저 자랑하고 싶었을 언니의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 어머님께 유언처럼 "내 몫까지 잘 살아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남편은 오히려 아버님이 투병하실 때는 종종 울더니 지금은 나보다 덤덤해 보인다. (하지만 부모의 죽음 앞에서 누가 정말 덤덤할 수 있겠는가.) 장례 이후 그는 Jame Blunt의 'Monsters'라는 노래를 들으며 혼자 목욕하다가 종종 울었다고 했다. 그래도 한편으론 아버님이 투병 중에 괴로워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다 끝난 지금이 편하다고 했다. 그 마음도 알 것 같았다. 모두 슬픔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고, 우리는 각자 서로의 속도와 방법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James Blunt - Monsters. 그의 뮤직비디오에는 말기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 Charles Blunt가 함께 출연했다.

 

 I’m not your son, you’re not my father
We’re just two grown men saying goodbye
이제 나는 아들이고, 당신은 아버지라는 이름을 넘어
그저 두 남자가 서로에게 작별을 고하는 거예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요즘 내가 나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마흔에 가까워지면서 나 역시 새로운 도전보다는 정착이 더 마음에 내킨다. 때로는 내 온몸의 세포가 변화보다는 안정을 원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끝내주게 재미있고 다이나믹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또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장례식에 내일처럼 슬퍼하며 와준 회사 동료들과 상사들을 생각했다. 본인의 생일에 장례 미사를 진행하러 와주신, 그리고 미사에서 “삶과 죽음은 맞닿아있다”라고 말씀하신 신부님도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에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주는 사람, 그들에게 중요한 일들을 나도 중요하게 여기며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도 여전히 나는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오랜만에 통화한 부모님께 틱틱거리고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고 살고 있지만, 이런 마음을 자주 상기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2025년이 또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