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글이 작년 7월에 멈춰있네. 글은 계속 꾸준히 쓰고 싶었는데 글은 나에게 여전히 각 잡고 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 일상이 바빠지니 가장 먼저 놓게 되더라. 그래서 이번 글은 일부러 힘 빼고 휴대폰으로 끄적여 보는 중.
작년 하반기에 있었던 가장 큰 일은 역시 집을 매매한 것이다. 결혼하고 거의 9년 만에 첫 내 집 장만이었다. 결혼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맞벌이니 차근차근 모으다 보면 금방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이 폭등했다 (18-19년). 폭등하는 시기에 우리 부부도 휩쓸려 한창 집을 보러 다녔었는데, 결국 실시간으로 가격이 오르는 이 경쟁 시장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첫 전셋집 이후에 우리는 세 번 더 전세살이를 했는데 (세 번의 매매 기회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는 일찍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유리했겠지만 그거야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고 그때는 빚을 낼 용기도, 모아둔 돈도 없었다.
작년 4월부터 6월까지 빡세게 집을 보고 7월에 계약했다. 여러 지역을 돌며 수 십 개의 집을 봤는데, 남편과 내가 동시에 마음에 들었던 유일한 집이었다. 매매가가 예산 밖이었지만 수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15년 된 아파트인데 고민 끝에 바닥과 샷시를 제외하고 최소한의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왔는데 만족한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인테리어 관련해서는 별도로 더 자세히 포스팅해보고 싶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차치하고 내 집이 생겼다는 안정감이 엄청 큰 것이었구나를 느낀다. 집을 사고 나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처음 해보는 집 계약과,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숫자의 어마어마한 대출 (새 집 계약일에 맞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어 우리는 전세금에 상응하는 만큼의 추가 대출을 받았어야 했다. 대출받은 은행에서도 개인 대출로는 최고 금액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테리어로 머리가 핑글핑글 돌아갈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회사에서는 연중 가장 큰 행사 준비를 맡아서 하고, 또 10월부터는 중요한 TF에 들어가게 되어 전일 재택에서 주 3일 출근 체제로 바뀌었다. 일 스트레스가 심해 12월과 1월에는 새벽에 자주 깼다.
그 와중에 대환장 빚잔치를 하고 남은 여윳돈, 아니 여유빚(?)으로 12월에는 도쿄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도쿄는 출장으로 예전에 자주 다녀오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 여행은 거의 처음이었다. 5박 6일이 넉넉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가고 싶었던 곳이 많았는데 아이와의 첫 해외여행이라 아무래도 일정을 아이에게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이 덕분에 처음 가 본 도쿄 디즈니랜드와 디즈니씨는 기대만큼 좋았다!
그리고 연말에는 많이 아팠다... 몇 달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리했더니 몸에 염증이 자주 생겼다. 예를 들면, 손에 있던 가시를 뗐을 뿐인데 손톱을 둘러싼 부위 전체에 염증이 생겨 손이 크게 부풀고 아팠다. 한 번이었으면 단순 세균 감염으로 쳤을 텐데, 두 번이나 그런 걸로 봐서 전반적으로 몸의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였던 것 같다. 일본 여행에 갔다 와서는 심한 목감기에 걸렸다. 고열에 몸살이 심해 찾아간 병원에서 코로나와 독감 검사를 했는데 둘 다 아니었다. 편도선에 염증이 크게 나있다며 병원에서는 목 안에 고름을 지져(?) 주셨다. 감기로 거의 두 달을 앓았다.
그 밖에도 미국 대학원 시절에서 알고 지냈던 친구가 남편과 한국에 놀러 와서 만나기도 했고,
25년 2월, 아이의 첫 니와 두 번째 이가 빠졌고 (또래보다 많이 일러서 걱정했는데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한다)
다니던 요가원이 1주년을 맞이했다.
집들이도 많이 했다. 집에 가족들이나 지인을 초대한 게 못해도 10번은 되는 것 같다. (거진 월 2회씩 초대했다는 얘기가 된다.) 요리 실력이 자연스럽게 늘었고, 점점 요리에 욕심도 생기고 있다. 요즘에는 놀랍게도 외식보다 집에서 밥 먹는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정신없고 지치는 나날들이었다 싶다가도 이렇게 모아서 보니 또 이 나름대로 귀하다. 이렇게 조각조각이라도 안 모아뒀으면 그저 ‘힘들었다’로만 기억되었을 텐데, 사실은 다채롭고 꽤 즐거웠던 날들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내 앞에 파도가 쳐서 당장 숨을 못 쉴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사실 바다는 그저 순리대로 흐를 뿐이다. 이 파도를 고스란히 맞서볼지, 파도의 흐름을 타며 즐겨볼지는 전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내 몫인 것 같고.
그나저나 25년에는 조금 더 자주 기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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