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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엄마가 되는 과정16

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냐면 어렸을 땐 드라마 에 나오는 로렐라이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로렐라이와 로리 같은 모녀 관계를 갖고 싶었다. 주위에서 도무지 엄마와 딸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친구처럼 지내며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주말마다 함께 정크푸드를 먹으며 영화를 보고, 각자 연애 상담도 하고(?), 서로의 결정을 전적으로 믿으며 응원해 주는 쿨한 관계. 나이를 먹으며 현실 감각이 생기고 실제로 아이를 키워보니 로렐라이 같은 엄마가 되려면 일단 내 아이가 로리처럼 알아서 바르게 자라주어야 하는데, 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생애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적절한 가이드와 코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적으로 안다. 그러다 최근 에 출연하신 하버드 출신 모녀 편을.. 2024. 1. 16.
둘째에 대한 고민 동생이 얼마 전 아기를 낳았다. 매일 아기 사진과 영상을 보내주는데 그 치명적인 귀여움에 하루에도 몇 번씩 돌려보고 있다. 출산 전 동생네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육아용품을 대부분 물려줘서 예전에 여름이가 입던 옷이 사진과 영상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우리 여름이도 이렇게 작았던 때가 있었는데’ 하며 흐뭇한 생각에 잠기곤 한다. * 참고로 여름이는 태명이다. 여름이가 태어난 지도 어느덧 3년 하고 4개월이 지났다. 어린이집에서는 벌써 둘째를 낳은 부모들도 꽤 보이고, 여름이 친구가 이미 둘째인 경우도 많다. 어릴 때부터 아기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여동생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는 결혼하기도 훨씬 전부터 아이는 낳으면 무조건 둘이라고 생각했다. 뼛속까지 계획형 인간이었던 시절이 있었는.. 2023. 7. 31.
나는 절대 우리 엄마같은 엄마는 될 수 없을거야. 최근 엄마가 26년 동안 다니신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셨다. 그날도 업무에 치여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가 까맣고 잊고 있었는데 엄마가 가족 카톡방에 보내신 (동료들로부터 받은) 꽃다발 사진을 보고 아차차 했다. 서둘러 축하한다고 답장을 보내니 아쉽고 허전하다는 우리 엄마. 제삼자의 눈으로 봐도 매우 고되고 고생스러운 일이라 가족 모두 입 모아 이제 제발 그만두라고 말한 지 10년 정도 된 것 같은데, 결국 정년을 채우시는 것을 보며 역시 엄마는 엄마구나 싶었다. 남편이 종종 내게 "나는 너의 존버(?)가 부럽다"라고 말하는데, 이건 진정한 존버의 대마왕인 우리 엄마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나에게 아주 티끌만큼이나 존버 정신이 있다면 이건 전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거다. 한 직장에서만 무려 26년이라니.. 2022. 7. 22.
요즘은 왜 아이와 관련된 사연을 보면 눈물부터 나는지 (+ 아동 정기 후원)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정말 "another level"의 경험이다. 모든 경험이 직접 겪어봐야 잘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부모가 되는 일이란 더욱더 그런 것 같다. 예전에 주변에서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은 친구들과 출산 및 육아 이야기를 할 때 그 대화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철저한 나의 오산이었다. 막상 내 아이가 생기니 '그때 그 친구가 했던 말이 이런 의미였어?'라는 생각을 하며 한 번 더 곱씹어보게 될 뿐만 아니라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이 모든 것을 먼저 경험한 그 친구에게 경외감(?) 같은 것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 뿐인가. 친구들의 출산을 축하한답시고 센스 없는 선물들을 보내며 - 예를 들면, 여름에 태어난 아기였는데 가을 옷을 선물하는 등 - 뿌듯해 했던 과거의 나 자신도 부.. 2020. 8. 11.
4개월 차 아기 엄마. 지난 백일의 이야기.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몇 달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출산할 때만 해도 아직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봄이었는데,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지 벌써 몇 주째 이어지는 장마에 계절의 변화가 사뭇 새삼스럽다. 휴직 후 출산까지 한 달간 열심히였던 블로그도 4개월 전 조리원에서 작성한, 우울감을 마구 발산하고 있는 (그래서 지금은 읽기 부끄러운) 포스트에서 멈추어 있다. 그래도 그간 작성했던 글들을 통해 유입되는지 방문자 수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었다. 애초에 혼자 두서없이 기록하고 있었고, 또 아무 예고 없이 몇 달간 방치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나의 하루가 전적으로 아이의 바이오리듬에 맞춰 돌아가다보니 블로그처럼 긴 호흡의 글은 쓰기 어려웠지만,.. 2020. 8. 10.
조리원 일기 (2) 모유가 나오지 않아서 임신 때부터 나는 당연하게 완모(완전 모유수유의 줄임말로, ‘완분(완전 분유수유)’과는 반대말)를 꿈꿨다. 1년을 꽉 채우진 못하더라도 몇 개월은 꼭 모유수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abies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모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영상을 보고 그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출산 당일, 병실로 옮겨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생아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부터 수유콜을 받을 것인지를 묻는 전화였다. 12시간이 넘는 진통으로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음에도 굳이 욕심내 받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7시 무렵 부름을 받고(?) 힘겹게 도착한 신생아실. 분만 직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여름이었다. 양수에 얼굴이 팅팅 불어 마치 외계인 같았던 첫인상과 달.. 2020. 4. 14.
조리원 일기 (1) 우울감으로 점철된 나날들 (산후우울증, 몸살, 훗배앓이) 조리원에 들어온 지 오늘로 딱 1주 차가 되었다. "조리원 천국"이라는 말은 안타깝게도 나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물론 조리원 퇴소 후 혼자 집안일하고 밤낮없이 아이까지 보는 생활이 지금보다 절대 낫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임신부터 출산까지 모든 게 순조로웠던 것이 무색하게 출산을 기점으로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산후우울증. 출산 후 80% 이상의 산모들이 한 번씩 경험한다고 하는데 임신과 출산 모두 교과서적인 편에 속했던 내 몸이 이번이라고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조리원 첫날, 낯설고 생소한 이 곳의 시스템에 적응할 새도 없이 모자동실 시간이 찾아왔다 (내가 있는 조리원에는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의 의무 모자동실 시간이 있다). 허둥지둥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쩌다 보니 의무 시간보다.. 2020. 4. 8.
출산 일기 (38주+6일 / 자연분만 / 르봐이예 분만) 오랜만의 블로그. 3월 마지막 날, 예정일은 일주일 가량 앞두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이를 만났다. 출산휴가에 들어간 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분만 후 2박 3일간 병원에서 지내다 퇴원하고 오늘은 조리원 3일차.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벌써 출산의 고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완전히 잊어버리기 전에 기억을 소환해 작성해보는 출산일기 (참고로 분만 진행 시각은 남편이 양가에 카톡으로 생중계한 시간을 기준으로 작성하였다). 20.03.30 03:00 변의를 느끼며 일어났다. 임신 기간 중 새벽에 깨는건 비일비재해 익숙했으나 변의를 느끼며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기에 조금 의아했다. 06:00 평소와 다름없이 유튜브를 보며 아침 요가를 하고 전날 미리 만들어둔 감자 계란 스프레드를 식빵에 발라 .. 2020. 4. 4.
임산부 막달검사 (단백뇨, 연쇄상구균 검출) 이전까지 3주에 한 번씩 갔던 산부인과를 지난주(36주)를 기점으로 매주 다니고 있다. 산부인과가 집 근처라 그나마 가깝고 남편도 요즘 재택근무 중이라 차로 편하게 갈 수 있으니 망정이지 사실 매주 가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여름이를 만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겠지. 그전까지는 절대 신비주의를 유지하며 얼굴을 보여주기를 완강히(?) 거부하던 여름이도 (지금껏 진행한 두 번의 입체 초음파에서는 뒤통수만 실컷 보았고, 일반 초음파를 볼 때도 거의 대부분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머리가 골반에 잘 자리 잡은 뒤로는 얼굴을 보여주고 있어 매주 여름이가 꼬물거리며 양수를 마시고 하품을 하는 것을 보는 것도 약간의 귀찮음은 충분히 상쇄해줄 만큼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어.. 2020. 3. 20.
임신과 감정 호르몬 (Feat.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임신을 하면 감정 조절이 어렵다는 건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임신하면서 일어나는 모든 신체적 변화는 다 겪으면서도 정신적 변화는 내게 해당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시정지'될 나의 커리어와 그 자리를 대신할 '엄마'라는 새 역할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아침마다 일기에 한 줄 한 줄씩 적어 내려갈 때의 감정도 '우울'보다는 '받아들이는 과정'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임신 기간 중 이건 호르몬 탓이다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무 이유 없이 무너진 적이 한두 번 있었는데 어제가 그랬다. JTBC에서 방구석 1열 에피소드 85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vs. 어느 가족' 편을 보던 중이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이미 봤던 영화였는데 보면서 코끝이 찡했던 장면을 어제 다시 봤는데.. 2020. 3. 13.
임신 36주, 출산가방을 챙기기 시작하다. 오늘부로 임신 36주에 돌입했다. 한창 입덧으로 고생했던 임신 초기에는 하루하루가 그렇게 더디게 갈 수가 없었는데 중기 이후부터는 시간이 흐르는 속도감이 내가 소화하기 힘들 정도니 역시 시간은 상대적인가 보다. 본격적으로 출산 휴가가 시작된 지난주는 책을 읽고, 블로그 글을 쓰고, 뜨개질을 하고 나름 바쁘게 보냈다. 주말에는 시누이 생일이라 시댁에도 잠깐 다녀왔는데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반찬도 잔뜩 받아왔다. 하지만 정작 출산 준비는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어버버 하다가 36주 차에 접어드니 정신이 들면서 살짝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출산 휴가만 시작되면 병원이나 구청에서 하는 출산 관련 교육이나 요가 수업을 열심히 들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이 모든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바로.. 2020. 3. 12.
여름아, 천천히 자라다오 (Feat. '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 아직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신호가 오면 출산하러 산부인과에 가야 하는지, 아이 예방 접종은 언제 맞추러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내가 아이 교육 관련 책을 먼저 보고 있는 게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최근 신의진 교수의 '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내용이 좋았다 (수려한 문체는 아니었지만, 조목조목 포인트를 잘 짚어주셔서 읽기 쉬웠다). 조기 교육 열풍이 한창 불기 시작했던 (혹은 어쩌면 현재 진행형인) 시절, 발달 장애로 상담을 받으러 온 아이의 케이스가 오히려 증가하는 것을 보고 저자는 모든 교육에도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는 어떤 아이로 길러야 할까? 시민 의식이 있는 아이 사회성이 좋은 아이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아이 배움.. 2020.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