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몇 달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출산할 때만 해도 아직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봄이었는데,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지 벌써 몇 주째 이어지는 장마에 계절의 변화가 사뭇 새삼스럽다. 휴직 후 출산까지 한 달간 열심히였던 블로그도 4개월 전 조리원에서 작성한, 우울감을 마구 발산하고 있는 (그래서 지금은 읽기 부끄러운) 포스트에서 멈추어 있다. 그래도 그간 작성했던 글들을 통해 유입되는지 방문자 수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었다. 애초에 혼자 두서없이 기록하고 있었고, 또 아무 예고 없이 몇 달간 방치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나의 하루가 전적으로 아이의 바이오리듬에 맞춰 돌아가다보니 블로그처럼 긴 호흡의 글은 쓰기 어려웠지만, 인스타그램 계정(@summer_jiyoo)을 따로 만들어 아이의 성장 과정이나 그때그때 느꼈던 나의 감정들을 짧게나마 기록하고 있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증발되는 생각들이 많아 항상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렇게라도 기록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육아는 아직까지도 매일 새롭고 어렵지만 그래도 100일을 기점으로 그 난이도가 한결 나아진 것 같다. 그전까지는 아가도, 나도, 남편도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의 달라진 일상에 대해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야 고백하건대 그 시간이 정말 녹록지 않았다. 아기는 계속 우는데 왜 우는지 모르겠고, 몸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아기의 수면 패턴이 잡히지 않아 연속으로 4시간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평소에도 잠이 많은 편인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상황이 오랜 기간 지속되다 보니 날이 갈수록 신경이 곤두서고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기와 함께 밤을 꼴딱 새우고, 다음날 아침까지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날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아기를 달래지도 않고 아기와 함께 운 적도 있었다.
아기 때문에 힘들지만, 또 아기 때문에 참고 견딜 수 있는 아이러니. 그 와중에도 아기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지난주 같은 반복적인 일상이었지만, 돌이켜보면 하루하루가 조금씩 달랐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가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도, 덕분에 아가가 벌써 엄마를 알아보고 활짝 웃어주는 것도, 무엇보다 지금껏 아가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커주는 것도 정말 분에 넘치게 감사한 일이다. 새로운 스킬을 배우고, 책을 읽어야만 성장하는 것이 아님을 느끼는 요즘이다. 여름이와 함께 나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매일이 새로운 날인 것처럼 여름이에게 최선을 다한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육아와 고군분투하고 있을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도 힘찬 박수와 함께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린 잘 해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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