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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엄마가 되는 과정

조리원 일기 (2) 모유가 나오지 않아서

by Heather :) 2020. 4. 14.

   임신 때부터 나는 당연하게 완모(완전 모유수유의 줄임말로, ‘완분(완전 분유수유)’과는 반대말)를 꿈꿨다. 1년을 꽉 채우진 못하더라도 몇 개월은 꼭 모유수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abies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모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영상을 보고 그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출산 당일, 병실로 옮겨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생아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부터 수유콜을 받을 것인지를 묻는 전화였다. 12시간이 넘는 진통으로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음에도 굳이 욕심내 받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7시 무렵 부름을 받고(?) 힘겹게 도착한 신생아실. 분만 직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여름이었다. 양수에 얼굴이 팅팅 불어 마치 외계인 같았던 첫인상과 달리 깨끗이 씻기고 배넷저고리를 입혀 놓으니 제법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수유 쿠션 위에 여름이를 눕히고 가슴을 대는 순간, 여름이는 이 상황이 이미 익숙하다는 듯 젖을 찾아 힘차게 빨기 시작했다. 아직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문자 그대로 “젖 먹던 힘을 다해” 빨고 있는 여름이를 보며 생명의 신비를 새삼 다시 느꼈다. 언제까지 빨리고 있어야 하는지, 빨고 있는 젖은 어떻게 빼야 하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어 그렇게 무방비하게 당하고(?) 있다가 겨우 물린 젖을 빼내고 나니 유두에 피가 나고 있었다. 다행히 미리 출산 가방에 넣어 챙겨 온 유두 보호 크림이 있었기에 병실에 돌아가 즉각 조치할 수 있었지만 한동안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이 민망한 부위에 옷깃을 스치기만 해도 아픔에 움찔거리며 외마디 낮은 비명을 지르곤 했다.

   이쯤 되면 포스트 제목을 ‘산부인과 일기’로 바꿔야 할 것 같지만 이제 다시 조리원 일기로 돌아가 보면, 보통 출산 후 3~4일이면 가슴이 돌처럼 딱딱해지며 젖이 돌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30분 유축을 해도 유즙이 살짝 맺히는 정도. 30분 유축의 결과물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깔때기에 붙어 젖병에 떨어지지도 않는 양이었다.

 

모유라고 하기도 민망한 양이니 그냥 유즙이라 부른다.

 

 

   서서히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해하던 중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조리원 3일차, 그러니 출산 5일 차에는 고열을 동반한 몸살이 찾아왔다. 가슴도 어딘가 닿기만 해도 아팠다. 그때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 가슴에 얼음팩을 하고 자서였을까 (보통 단유를 위해, 혹은 젖의 양을 줄이기 위해 가슴에 얼음팩을 많이들 사용한다고 한다). 다행히 열은 다음날 바로 내려갔고, 가슴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지만 젖은 여전히 돌지 않았다.

조리원 일기 (1) 우울감으로 점철된 나날들 (산후우울증, 몸살, 훗배앓이)

조리원에 들어온 지 오늘로 딱 1주 차가 되었다. "조리원 천국"이라는 말은 안타깝게도 나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물론 조리원 퇴소 후 혼자 집안일하고 밤낮없이 아이까지 보는 생활이 지금보다

heatherblog.tistory.com

 

   사실 모유가 나오지 않는 산모들은 꽤 있다고 한다. 특히 초산일 경우, 그리고 마르고 몸이 찰 경우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시했던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거기에 산후 우울증까지 더해지니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으로 다가왔다. 처음엔 오기가 생겼다. 미역국을 더 열심히 챙겨먹기 시작했다. 한 사발씩 국물도 남김없이 먹었다. 여러 카페와 유튜브의 조언에 따라 새벽마다 일정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고 유축을 했다. 의무 모자동실 시간 외에도 수유콜이 오면 최대한 여름이를 방으로 데려와 최대한 자주 젖을 빨리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엔 힘차게 젖을 빨던 여름이는 분유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더니 점차 내 젖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적은 노력에도 콸콸 쏟아지는 분유에 비해 원하는 만큼 모유가 나오지 않자 처음에는 짜증을 부리다 나중에는 젖을 물리면 눈을 감고 외면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그저 젖을 빨다 자는 줄 알았다. 나중에 조리원 선생님을 통해 아기가 내 젖을 보이콧(?)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심적으로 힘든 하루 하루가 지나고 출산 7일 차 밤, 유축을 하는데 드디어 깔때기에만 한 방울씩 맺히던 모유가 젖병으로 떨어졌다. 30분 유축 결과 젖병에 담긴 모유는 불과 10방울 남짓. 이마저도 감격스러워 사진으로 찍고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 자랑했다. 젖병 한 병은 너끈히 채우는 다른 산모들과 달리 이 10방울이 담긴 젖병을 들고 쭈뼛쭈뼛 신생아실로 향했다. 조리원 선생님께서 오셨다. 민망함에 변명하듯이 말이 튀어나왔다.

 

"아... 제가 드디어 모유가 나왔는데 이거밖에 안나와서... 이거라도 먹일 수 있을까 해서요."

 

조리원 선생님께서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럼요. 분유에 섞어서 먹일게요. 늦은 밤까지 유축하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얼른 들어가 쉬세요."

 

나의 첫 모유. 이게 뭐라고 감격스러운 마음에 사진으로 남겼다.

 

 

   그래서 그 날을 기점으로 나의 모유양은 기적적으로 늘었을까?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내 모유량은 여전히 방울방울 떨어져 매번 젖병의 최소 눈금선(30ml)은 커녕 10ml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제 괜찮다. 모유가 나오지 않는게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큼 큰 일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왜 그 당시에는 그렇게 느꼈을까. 아무래도 산후우울증이 맞았나보다.) 소량의 모유도 꿋꿋이 젖병에 담아 신생아실로 가져가면 조리원 선생님들이 항상 반갑게 맞아주신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너무나 미미하기에 이 노력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소량의 모유가 여름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지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유축을 하고 직수를 한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모자 동실 시간에 젖을 빨지 않는 여름이를 수유쿠션에 억지로 눕혀 조금이라도 빨게 하려고 애쓰던 중 물품을 보충해주러 내 방에 들르신 한 조리원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셋째 때 본인도 모유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 괴로웠다는 그 분의 진심에서 우러난 따뜻한 한 마디에 그 분께서 방에 나가시고 한동안 방에서 크게 흐느껴 울었더랬다.

 

“잘하셨어요. 그 오랜 시간 (직수하는 시간) 동안 여름이에게 사랑을 준 거니까요.”

 

 

 

 

 

 

 

 

 

모유가 나오지 않아서. 그 결핍만큼 엄마가 더욱 사랑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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