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3주에 한 번씩 갔던 산부인과를 지난주(36주)를 기점으로 매주 다니고 있다. 산부인과가 집 근처라 그나마 가깝고 남편도 요즘 재택근무 중이라 차로 편하게 갈 수 있으니 망정이지 사실 매주 가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여름이를 만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겠지. 그전까지는 절대 신비주의를 유지하며 얼굴을 보여주기를 완강히(?) 거부하던 여름이도 (지금껏 진행한 두 번의 입체 초음파에서는 뒤통수만 실컷 보았고, 일반 초음파를 볼 때도 거의 대부분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머리가 골반에 잘 자리 잡은 뒤로는 얼굴을 보여주고 있어 매주 여름이가 꼬물거리며 양수를 마시고 하품을 하는 것을 보는 것도 약간의 귀찮음은 충분히 상쇄해줄 만큼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어제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 한동안 기분이 축 쳐졌었는데 (그래서 요즘 매일 작성하고 있던 블로그 포스팅도 어제는 쉬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당일 소변검사에서 미세하게 단백뇨가 나왔고, 지난주에 진행했던 막달 검사 중 세균검사에서 연쇄상구균(GBS균)이 검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단백뇨는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피곤하거나 짜게 먹으면 일시적으로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식사 습관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요즘 빈뇨감 때문에 새벽에 몇 번씩 깨었다 다시 자기 일쑤라 그것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문제는 연쇄상구균인데, 이건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시며 약을 처방해 주셨다. 초기 임산부한테도 발견되면 처방할 정도로 아이에게는 문제가 없는 약이라고 하셨지만, 임신기간 중 (입덧이나 비타민 D 부족 같은 마이너한 반응을 제외하고는) 처음 발견된 문제 요소라 덜컥 겁이 났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연쇄상구균은 임산부 10명 중 1명이 걸릴 정도로 흔하게 나타나는 균이지만, 자연분만 시 산도를 타고 아기가 내려오면서 감염될 경우 뇌수막염이나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는, 그래서 성인보다 아기에게 치명적인 균이라고 한다. 여름이는 지금껏 혼자서도 쑥쑥 잘 커주고 있는데 엄마가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약을 먹게 되었다는 생각에 미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어제 점심부터 처방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유독 강한 태동이 느껴져 괜히 약 때문인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건'에서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죄책감'이라는 감정도 함께 장착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보다. 아주 사소한 것도 전부 내 탓, 나의 불찰같이 느껴진다. 참고로 책에선 불안한 생각이 들면 그걸 일단 멈추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일도 있음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음을 느낀다.
아무튼, 그리하여 5일치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마스크 5부제 때문에 골목 끝까지 줄이 이어져 있는 약국에서, 우리만 실제로 약을 타기 위해 약국을 갔는데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래도 분만하기 전 미리 알게 되어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 5일간 약을 꾸준히 먹고 다음 진료 시에는 꼭 완치되었으면 좋겠다. 여름아, 우리 꼭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엄마도 조금 더 힘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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