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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엄마가 되는 과정

조리원 일기 (1) 우울감으로 점철된 나날들 (산후우울증, 몸살, 훗배앓이)

by Heather :) 2020. 4. 8.

   조리원에 들어온 지 오늘로 딱 1주 차가 되었다. "조리원 천국"이라는 말은 안타깝게도 나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물론 조리원 퇴소 후 혼자 집안일하고 밤낮없이 아이까지 보는 생활이 지금보다 절대 낫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임신부터 출산까지 모든 게 순조로웠던 것이 무색하게 출산을 기점으로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산후우울증. 출산 후 80% 이상의 산모들이 한 번씩 경험한다고 하는데 임신과 출산 모두 교과서적인 편에 속했던 내 몸이 이번이라고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조리원 첫날, 낯설고 생소한 이 곳의 시스템에 적응할 새도 없이 모자동실 시간이 찾아왔다 (내가 있는 조리원에는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의 의무 모자동실 시간이 있다). 허둥지둥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쩌다 보니 의무 시간보다 훨씬 오래 여름이와 단둘이 보내고 다시 신생아실에 데려다 놓은 후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데 남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주체할 수 없이 밀려오는 서러움에 끄억끄억 소리까지 내며 그렇게 한참을 울었더랬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조리원에 남편의 출입도 금지된 탓에 성치 않은 몸을 챙기는 일도, 아이를 돌보는 일도 온전히 내 몫이 되어버려 고단함이 서러움으로 폭발한 것이다. 병원에서 머물던 2박 3일 동안 남편이 병실에서 함께 생활하며 나의 손발이 되어주던 것에 비해 180도 달라진 상황을 그렇게 하루아침에 아무런 준비 없이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 후로 일주일차인 오늘까지 하루도 휴지를 적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붙잡고 우는 대상도 남편에서 친정 엄마, 조리원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입소한 지 삼일 째 되던 날에는 몸도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열이 38도를 넘어가 조리원에도 비상이 걸렸다. 조리원 선생님의 권고로 의무 모자동실 시간에 여름이 없이 혼자 방으로 올라가는데 그것조차 서러워 눈물이 났다. 온몸에 근육통에 체온 조절이 안되어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편히 아파할 수도 없는 불안하고 눈치도 보이는 상황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다행히 다음날 고열은 내려가 단순 몸살로 판명돼 나도, 가족들도, 조리원 선생님들도 한시름 놓았지만 짧은 기간 별의별 무서운 생각들이 들어 (“혹시...?”, “나 때문에 조리원 전체가...?”) 그 자체만으로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

 

   몸살의 여파로 다음날까지 방으로 식사 배식을 받고 반 자가격리에 들어가다 보니 우울감은 점점 더 심해졌는데, 몸살이 잠잠해지니 훗배앓이로 추정되는 복통이 찾아왔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복통이었다. 마치 몸 안의 장기들이 중력에 의해 바닥 끝까지 당겨지는 듯한 통증. 몸살 때와 마찬가지로 또 타이레놀 두 알을 처방받았다. 의무 모자동실 시간에 여름이를 봐주시겠다는 조리원 선생님들께 두 번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여름이를 억지로 데려와 젖을 빨리는데 고통에 몸이 베베 꼬이고 신음소리가 절로 났다. 걱정이 되어 방으로 찾아오신 선생님께서 분유 보충은 본인이 하시겠다며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일찍 여름이를 데려가 주셨다. 그때쯤 드디어 진통제 약빨이 돌아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내 몸과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좌절감에 상황적 요인까지 겹쳐 모든걸 홀로 감내해야 하는 시간들. 조리원 천국은 내겐 없었다. 조리원이 나빠서가 아니라 단지 지금 이 시기가 나빴다. 출산 후 찾아와 나를 잠식하는 이 감정 호르몬이 나빴고, 그걸 혼자 감내해야 하는 이 상황이 나빴다. 그렇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한 나날들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이 곳에서의 일주일이 흘렀다. 평소라면 1년에 한 번 아플까 말까 할 만큼 건강한 내가 조리원에서는 허약 산모로 유명세를 떨쳐(?) 지나갈 때마다 조리원 선생님들이 인사 대신 “몸은 좀 괜찮아요?”라고 물어보신다.

   하지만 안다. 이 또한 곧 지나갈 것이라는 걸. 오가다 마주치는 몇몇 산부들의 눈시울이 나와 같이 붉은 걸 보면 세상이 무너진 듯한 이 슬픔과 무기력함도 나에게만 찾아온 특이한 감정은 아닐 것이다. 조리원의 방침과 이곳의 분위기 상 산모들과 소통할 시간이 많지 않아 나도 어림짐작할 뿐이지만 이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만으로 위안이 된다. 단지 바라는 게 있다면 우리의 이 고통과 인고의 시간이 평범한 일상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것뿐. 엄마는 강하다.

오늘도 잘 먹고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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