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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초보 요기니

요가, 지난 8개월의 수련 기록. 햄스트링 부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Heather :) 2023. 8. 22.

   요가 수련을 다시 시작한 지도 어느덧 8개월이 다 되어간다. 2023년 가장 열과 성을 다한 게 요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요가에 진심이었다. 매 수련이 소중하고 특별해서 지난 수련 과정을 정리하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지 몇 주가 지났음에도 좀처럼 마무리하지 못했었다.
 
   블로그에 '초보 요기니'라는 카테고리를 개설했다. 하나의 포스트에 모든 것을 담겠다는 생각이 writer's block의 주범인 것 같아서. 수련에 대한 기록은 앞으로도 차차 이어나가기로 하며, 이번 글에서는 어떻게 다시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수련 중 겪은 부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요즘의 마음가짐에 대해 썼다.
 
 


  

새벽 요가를 다시 시작하다


   재작년 제주도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요가원을 다니며 강렬한 경험을 했는데 (아래 포스트 참고) 이후 육지로 돌아와서는 다시 섣불리 시작하지 못했었다. 워킹맘이라 아무래도 새벽 시간이 가장 자유로웠는데 일단 새벽에 여는 요가원이 잘 없기도 했거니와 내가 과연 꾸준히 다닐 수 있을까라는 자기 확신이 부족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할 때는 끝이 정해져 있었으니 어떻게든 해냈지만 이 루틴을 과연 내가 매일의 일상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 새벽 요가의 기억

작년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다녀오며 꼭 따로 포스팅해야지 하며 미뤄두었던 이야기가 있다. 제주에서 뭐가 가장 좋았어?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이야기. 바

heatherblog.tistory.com

 
   그러다 새해를 앞두고 무턱대고 요가원 등록을 했다. 집 근처에 유일하게 새벽 요가를 하는 곳이 차로 15분 거리였지만 한 번 마음을 먹고 나니 오히려 쉬웠다. 첫 수업을 듣고 좋아서 바로 3개월 수업권을 결제했다. 집에서 혼자 할 때는 30분을 채우기도 힘들었는데 요가원에서는 90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출산 후 3년 넘게 운동을 쉬어 나의 근력과 유연성은 처참한 수준이었지만 하루의 시작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보낼 수 있다니, 이 얼마만인가. 분명히 요가를 하고 있는데 마치 호사를 누리는 것처럼 느껴졌디.
 

새벽 요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왼쪽 햄스트링 부상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새벽 요가를 진심으로 즐기게 되었다. 나는 전굴보다 후굴에 강하고, 하체보다 상체가 유연한 편이다. 지금은 나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지만, 그때는 그저 빨리 난이도 있는 동작들을 해내고 싶었다. 내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무리한 동작들을 이어가다 부상을 입었다. 요가를 다시 시작한 지 불과 3개월이 지나서였다.
 
   다치게 된 경위를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렇다. 파리브리타 자누시르사아사나를 하던 중에 선생님께서 조금 더 눌러주셨는데 순간 왼쪽 골반에서 손가락 마디 꺾는소리와 비슷한, 하지만 음량은 그보다 100배 정도 큰 소리가 났다. 그날 이후 걸을 때마다 다리가 아팠다. 그런데 통증과 함께 한편으로는 시원한(?) 느낌도 있어서 '나의 뻣뻣한 고관절이 드디어 풀린 걸까?'라는 어리석은 기대를 했다. 그렇게 아픈 상태로 미련하게 한 달을 더 수련했고, 그럼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제야 동네 정형외과에 가보았다. 다행히 X-ray 상으로는 이상이 없었다. 나는 안도했고, 더 열심히 요가원을 다녔다.
 
   그땐 왜 그렇게 미련하게 수련을 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멈춤'이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한 요가인데. 다시 게으르고 뻣뻣한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후 한동안 새벽 수련을 하고, 아이 등원을 시킨 후 오전에 물리치료를 받고, 또 다음날 새벽 수련을 하러 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다 골반 통증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그 통증 때문에 요가 동작을 하면서도 몸의 정렬이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요가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쉴 수 있었다.
 
   나중에 나의 부상 위치를 햄스트링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햄스트링은 무릎 뒤편 근육만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그때 다친 햄스트링은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완벽히 낫지 않았다. 물론 처음 다쳤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왼쪽 발로 지탱하는 동작들은 오른쪽 발로 할 때보다 힘들고, 수련을 하고 나면 왼쪽 뒷골반이 당기듯 아프다. 햄스트링은 한 번 다치면 다치기 전으로 완벽히 돌아가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부상 없이 안전하게 수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이 사실을 비싼 값을 치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안 되는 동작들을 무리해서 하지 않는다. '오늘은 안 돼도 언젠가는 되겠지. 지금은 그 언젠가를 위한 과정에 있는 거야'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요가뿐만 아니라 인생의 전반에도 적용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원칙이 생긴 셈이다.
 

매일 정형외과 물리치료실로 출근하던 시절


 

당분간 새벽 요가 대신 아침 요가


   지난주부터는 다른 요가원을 다니고 있다. 기존에 다니던 요가원이 이전 준비로 잠시 쉬게 되었기 때문이다. 집 근처에는 새벽 시간에 오픈하는 요가원이 없어 막막했는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결국 '새벽'이라는 조건을 포기하고 당분간 아침 요가를 다니기로 했다. 기본이 재택이고 유연 근무제를 실시 중인 회사의 장점을 이번에 톡톡히 봤다.
 
   기존에 다니던 요가원은 전통 하타 요가를 가르치던 곳이라 하나의 동작에 오래 머물렀다면, 이번 요가원의 스타일은 빈야사에 가까워 수련 중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게다가 해가 잘 드는 오전 시간은 확실히 새벽보다 더워, 수련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요가복과 매트가 땀으로 흠뻑 젖는다. 개인적으로는 차분한 분위기의 하타 요가가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새 요가원으로 옮기고 나서 일주일 사이에 1kg가 빠진 걸 보니 유산소 운동 효과가 있는 빈야사 요가도 나쁘지 않은데? 싶었다. 사실 스타일과 지도 방식의 차이일 뿐 요가는 언제나 옳다.
 

새 요가원에서 수련 뒤 집으로 가는 길. 물 아니고 땀 맞습니다..



 
   요가를 다시 시작한 지 8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삶의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느낀다. 단 하나의 동작도 대충 넘기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내 안의 불안과 조바심이 사라지고, 차분함과 밝은 에너지가 차오름을 느낀다. 남편과 싸우거나 업무 스트레스로 씩씩거리며 요가원 앞에 도착한 날에도 돌아가는 길에는 ‘그래, 인생 뭐 별 거 있나?’ 하며 웃으며 넘기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진짜로 웃으며 넘길 수 있을 때까지는 아직 수련이 더 필요한 듯 하지만). 요행을 바랄 수 없고 수련 시간과 양에 비례해 조금씩 성장한다는 점도 요가의 매력 중 하나다.

   누군가 올해 가장 잘한 일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요가를 다시 시작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직 8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이보다 더 잘한 일은 없을 거라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그리고 건강하게 수련해 나가고 싶다.

 

 

 

요가 수련은 모든 면에서 삶을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나는 왜 요가를 하는가?> - 배런 뱁티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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