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다녀오며 꼭 따로 포스팅해야지 하며 미뤄두었던 이야기가 있다. 제주에서 뭐가 가장 좋았어?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이야기. 바로 요가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가 두 돌이 넘은 요즘은 간헐적으로 미라클 모닝을 하고 있으나, 작년까지만 해도 아기가 새벽에 두어 번씩은 꼭 깼기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엄두를 못 냈었다 (총 수면시간은 7~8시간을 채웠음에도 새벽에 여러 번 깨면 하루 종일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다). 그런 내가 제주에서 아침 6시에 시작하는 요가 수업을 등록한 것이었다. 아마 이보다 더 늦은 수업이 있었다면 주저 없이 그걸 택했겠지만 이 요가원의 평일 수업은 아침 6시와 저녁 7시 40분, 딱 두 번밖에 없었다. 회사의 기본 퇴근 시간이 7시였기에 매일 칼퇴를 하지 않는 이상 저녁반 수업은 불가능에 가까운 옵션이었고 그래서 고민 끝에 아침 6시 수업을 듣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 요가원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요가원이었다. 늦지 않게 가려면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게다가 10월의 제주는 해가 왜 이렇게도 짧은지. 5시에 알람을 맞추고 눈을 뜨면 이 세상에 깨어있는 존재는 나와 귀뚜라미뿐인 것 같았다 (차 시동을 걸면 그 소리에 동네 개 몇 마리가 깨서 짖곤 했으나 그래도 소수다). 그럼에도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 라는 심정으로 호기롭게, 또 새벽의 초행길에 살짝 긴장하며 첫 수업에 갔던 기억이 있다.
첫날 수업을 마치고 '오 생각보다 할 만한데?' 라고 생각하며 선생님과 담소도 나누며 한껏 여유 부리고 돌아온 나는 둘째 날부터 처참히 깨졌다. 부장가아사나 10분, 우스트라사나 15분 같은 주문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머물러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자세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시르시아사나 15분" 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시르시아사나를 성공해 본 적도 없는데 그걸 15분을 하라고요?
다른 수강생들은 망설임 없이 자세를 하는데 나만 혼자 다리로 벽을 쿵쿵 쳤다 떨어지는, 웃기지만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 후에도 매일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꾸준히 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오랜 기간 했던 운동이 요가인데 선생님은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자세들을 주문하시고 (바카아사나, 파르스바, 드롭백, 컴업 등등) 또 수강생들은 척척 그 동작들을 해냈다. 며칠이 지나고 선생님이 수강생한테 "OO쌤", "△△쌤" 이라고 부르시는 것을 듣고 나서야 대충 상황 파악이 됐다. 이곳은 요가 선생님들이 수련을 하러 오는 곳이구나. 우리 선생님은 선생님의 선생님이시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은 (이효리가 다니는 요가원으로 이미 유명한) 한주훈 요가원의 한주훈 선생님 제자셨다.
그 후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알람을 못 듣고 자버린 며칠을 제외하고는 꽤 꾸준히 나갔다. 제주에서의 새벽 기상은 도심에서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불빛 한 점 없는 깜깜하고 고요한 시각에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게 좋았다. 여전히 따라하지 못하는 동작이 반 이상이었지만 이 말도 안 되는 동작들을 어떻게든 따라해 보려고 아득바득거리는 내 모습도 재미있었다. 잘하나 못하나와는 상관없이 어떤 것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경험 또한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록 한 달이었지만 몸이, 그리고 마음이 서서히 변하는 게 느껴졌다. 아기를 낳고 오래 지속된 무기력이 안개 걷히듯 사라지고 내 삶을, 그리고 나를 다시 아끼며 잘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의 요가를 끝내고 나면 출발할 때의 그 막막함은 온데간데없고 따뜻한 햇살과 충만해진 기분만이 존재했다.
제주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지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일상으로 돌아가도 꾸준히 수련하고 싶다고, 또 제주도에 가면 들르겠다고 선생님께 약속했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도시로 돌아온 나는 다시 게을러졌고, 짜증이 많아졌고, 또 참을성이 없어졌다. 최대한 매일 새벽에 기상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요가는 매일 하지 않는다. 돌아와서 며칠을 쉬었더니 다시 녹슨 문고리 마냥 삐그덕거리고 뻣뻣해진 내 몸뚱이에 다시 수련을 통해 기름칠을 하자니 그에 필요한 시간과 수고로움이 너무나 예측 가능하여 오히려 다시 시작할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함이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잘 통하지 않는 덕목이 통하는 곳 또한 요가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늘은 점심을 경건하게 포기하고 요가를 했다. 내가 이리 흔들리고 저리 치일 때마다 요가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요가를 미워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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