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좋아한다. 재즈의 모든 요소를 좋아한다. 재즈의 끝없는 변주, 얼핏 들으면 불협화음 같지만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멜로디, 연주자 한 명 한 명에게 주어지는 스포트라이트 (그 뒤에 따라오는 관객들의 박수갈채까지), 그리고 내달리다 돌아갔다를 반복하며 결국 메인 멜로디로 수렴하는 과정 등등. 그런 점에서 토니 모리슨의 <재즈>는 내가 좋아하는 재즈의 모든 요소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음악으로서의 재즈
이 책은 이야기의 중반부로 갈 때까지도 도무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쏟아지는 등장인물에 끊임없는 장면 전환, 게다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지. 이렇게 세세한 내용까지 알고 있다니 전지적 작가가 틀림없다고 확신이 들다가도 갑자기 의심과 추론을 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나’는 그저 주인공들과 함께 그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관찰자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를 내 마음대로 "전지적 관찰자 시점(?)"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지지부진하다가 이 책에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은 책의 정확히 1/2 지점, 바이올렛이 앨리스와의 대화를 회상한 뒤 가게를 나서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외투의 단추를 잠그고 가게를 나서며 깨달았다.
동시에 그 바이올렛 역시 깨달았다.
봄이 왔다는 것을. 이 도시에.
나중에 보니 그 부분이 재즈로 치면 바이올렛의 독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시작으로 조, 트루벨, 골든 그레이, 도카스, 펠리스까지 중간중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각자의 연주를 이어나간다. 이 연주는 등장인물이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서 할 때도 있고 전지적 관찰자인 ‘나’를 통해서 전달될 때도 있는데,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워낙 뚜렷하기도 하거니와 읽어 내려가며 점점 개인 간의 연결고리를 찾는 재미가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에서는 어느 한 가지에 몰입해 무아지경인 상태를 ”in the zone” 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책(연주)에서 조에게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과묵하고 표현이 서툰 (적어도 내가 생각한 중년의 조의 이미지는 이렇다) 조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거의 폭주(?)하는데, 그래서 그의 독백은 존댓말로 시작했다가 마지막엔 반말로 끝난다. 다분히 역자의 의도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어처럼 반말-존댓말 개념이 없는 원서에서는 이 부분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재즈 시대 (Jazz Age)
이 책을 논할 때 시대상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한 시대의 문화를 규정지을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을 갖췄지만 여전히 그들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시대. 그 시절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작은 불편함이었을까, 아니면 반드시 타파해야 할 악습처럼 느껴졌을까? 전자에 해당하는 많은 이들은 이 소설 속 대부분의 인물처럼 살았을 것이고, 소수의 후자는 바이올렛의 아버지처럼 혁명가의 길을 자처했을 것이다.
자유로운 검둥이가 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기를 원해요.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다. 불과 100년 전, 세대로 따지면 한 3~4세대 전만 해도 낭만과 혼돈이 공존하는 재즈 시대였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사회의 진보가 이토록 빠르구나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변화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데 그 방향성이 맞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또한 재즈의 선율처럼 여러 차례 우회했다 되돌아갔다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수렴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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