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4.5
이번 제천 여행 때 가져간 책 두 권 중 한 권이자, 북클럽에서 이 달의 책으로 선정된 책. 원래는 이 책을 사지 않으려고 했다. 구입하려고 책을 검색하다가 작가의 소개를 봤는데 살면서 여러 중독에 빠졌고, 평생 미혼이었다가 40대의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나와 너무나도 거리가 먼 사람 같았다. 이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내가 과연 일말의 공감이라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제천 여행 이야기는 이전 포스트를 참고 ⬇️)
결론적으로는 빌릴 곳을 찾지 못해 마지못해 책을 샀고 그것은 잘 한 결정이었다. 어떻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언어로 이렇게 섬세하게, 하지만 장황하지 않고 담백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1990년대로, 시대는 다르지만 작가가 30대에 했던 생각과 고민들은 나의 그것과도 너무나도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역도, 문화도, 시대도 다른 이 미국 작가의 에세이에서 이 정도의 위로를 받은 데에는 멋진 번역도 한몫한 것 같다. 번역이 너무 좋아 오히려 원문이 궁금해졌던, 읽으며 혼자 감탄한 문장들이 많았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p.19)
“어머니의 과묵함에서 행간을 읽고 그로부터 온기를 포착하는 법을 익혔다.” (p.31)
“저만의 장소와 시간 안에서는 아주 아름답게 작동했던 관계라는 작지만 소중한 범주로 분류하게 될 것 같다.” (p.71)
“희석된 고통은 직면한 고통과 결코 같지 않다.” (p.155)
섬세한 작가와 섬세한 번역가 (오죽하면 책을 읽던 중 김명남 번역가를 검색해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찾아 바로 팔로우했다). 번역가께서 책 서두에 본인의 인생을 바꾼 책이라고 소개한 전작 <드링킹>도 꼭 읽어보아야겠다. 얼핏 보면 접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알코올 중독의 경험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책에서도 또 묘하게 공감되는 어떤 지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아무런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다가 결국 내 좁디 좁은 책장에서 살아남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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