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첫날 스냅사진 작가님과 스케줄이 어긋나긴 했지만 (이전 포스트 참고), 덕분에 푹 자고 개운하게 둘째 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전날 얇은 옷을 입어 하루 종일 덜덜 떨고 다녔던 것을 교훈 삼아 옷도 두껍게 바꿔 입었다.
파리 스냅은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해두었는데, 인스타에서 #파리스냅 을 검색하면 나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사진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몇 개 골라 작가님께 직접 DM을 보냈다. 한 서너 군데에 연락을 취한 것 같은데, 가격 비교를 해보고 최종적으로는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할인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던, 그래서 가장 저렴했던 곳과 계약을 했다. 이들의 촬영 스타일과 색감이 모두 마음에 들어 사진만으로는 우위를 가리기 어렵기도 했고 (적어도 내 눈에는), 또 우리는 예술 작품을 찍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이 파리의 풍경과 함께 담겨 오래 두고 꺼내볼 수 있기를 원했다.
안내받은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촬영 코스는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에펠탑 코스, 루브르 박물관 코스 등), 나는 유명한 건축물보다는 파리의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찍고 싶었다 (물론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작가님께 이런 희망사항을 전달하니 다행히 흔쾌히 수락하셨다. 당일날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작가님도 매번 같은 곳에서 동일한 컨셉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지겨워지려던 찰나, 우리에게서 이런 요청을 받아 기쁘셨다고.
전날과 같은 루브르 리볼리 역에서 작가님을 뵈었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분이셨다. 예약한 촬영 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어제 시간 착오로 기다리게 해 죄송하다며 조금 더 길게 찍어주신다고 하신다. 그렇게 우리는 작가님의 안내를 받으며 촬영을 시작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본 것 같은 거리의 가판대에서, 그냥 이름 없는 다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퐁네프 다리에서, 골목골목에 자리 잡은 로컬 레스토랑에서, 목적지도 없이 발 가는 대로 움직이며 참 부지런히도 찍었다. 하루 종일 흐린 날씨라 불안 불안하긴 했는데 결국 중간에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다. 가판대 상점 주인들도 급하게 판매하던 상품을 치우고, 촬영 중이던 우리도 비를 피해 천장이 있는 건물로 뛰어가 비가 멈추기를 기다렸는데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다행히 비는 금방 그쳤고, 촬영은 이어졌다.
퐁네프 다리 위에서 카메라로 남편 얼굴을 이렇게 찍고 있으면,
작가님이 우리의 모습을 이렇게 담아 주셨다 (물론 포토샵으로 색감 조정을 하신 거겠지만 사진의 퀄리티가 이렇게 다르다).
그리고 수줍게 공개하는 사진 몇 장 더.
짧은 시간 열정적으로 찍어주신 작가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커피 한잔을 사드리겠다고 바로 앞에 보이는 카페에 갔는데, 작가님은 뜨거운 커피를 원샷하시더니 또 카메라를 집어 드셨다.
그러고는 우리를 이렇게 예쁘게 찍어주셨다.
역시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둘이 여행을 가면 둘이 함께 담긴 사진을 찍기 어려운데, 스냅 촬영을 통해 그 아쉬움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결국 그 이후에 프랑스에서 찍었던 많은 사진들은 드롭박스에 고이 모셔두고, 이 날 겨우 1시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찍은 이 사진들만 인쇄해 냉장고에 잘 붙여놓고 매일 추억하고 있으니 우리의 계획대로 된 셈이다.
러브그래퍼 (파리 스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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