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고민 끝에 동문 서점을 결국 팔게 되었다는 서점 주인 분의 글을 보았을 때, 언젠가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영업을 지속할 수 없는 주된 이유는 물론 수익성 악화겠지. 더군다나 주인 분이 서울에 거주하고 계셨기 때문에 서점 관리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전국의 여러 서점을 다녀보며 느낀 점은, 서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큐레이션인데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면 트렌드나 그 지역 주민이나 여행객의 취향을 그때 그때 반영할 수 있는 책을 큐레이션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주인 분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하셨던 것 같다. 전주에 거주하고 있는 디자이너 두 분에게 서점을 임대해 본인이 할 수 없는 서점의 관리를 맡겼고 (디자인을 하시던 이 청년분들은 매주 저녁에 이 서점에서 지역 주민들을 모시고 캘리그라피 수업을 진행하고 계셨다), 또 서점 건물의 옥탑방을 개조해 에어비앤비 사업을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확실히 평범한 에어비앤비는 아니었다. 당시 우리가 방문했었던 2018년 기준, 1박에 12,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에 묵을 수 있는 대신 숙박 일수에 비례해 하루에 4시간 이상의 서점 운영을 조건으로 건 것이다 (나중에 이 분의 블로그를 보니 스코틀랜드에서 비슷한 컨셉으로 운영 중인 서점에서 영감을 받아 처음 시작하셨다고 한다).
에어비앤비를 시작하시고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이곳을 알게된 우리 부부는 주저 없이 예약을 했고, 그 해 우리의 여름휴가는 대구와 부산을 거쳐 전주로 이어지는 일정이었는데, 동문 서점에서의 경험이 그 앞의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묘연하게 할 만큼 강렬히 남았다. 그 당시의 감상은 내가 별도로 운영하는 영어 블로그에도 'Selling An Experience'라는 제목으로 포스팅한 적이 있다.
사실 숙박 시설만 놓고 본다면 이 곳은 여러 측면에서 아늑함보다는 불편함에 가까웠다. 침대도 없고, 화장실도 밖에 있어 매번 신발을 신고 나가야 했다. 또 방 안에 여러 종류의 벌레 약이 비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벌레들도 자주 침범하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거기서 혹시 조그만 바퀴벌레 한 마리라도 봤다면 나는 분명 기겁하고 당장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구구절절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겠지.) 그럼에도 이 곳에서의 3박을 지금까지도 남편과 이야기하며 추억하는 이유는 이곳만이 제공할 수 있었던 공간에 대한 경험 덕분이었던 것 같다. 서점 주인 혹은 카페 사장이 되어 보는 경험. 상대적으로 자영업자보다 가벼운 책임감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일해볼 수 있는 경험. 그 경험이 여행자들로 하여금 불편한 시설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가짐을 장착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는 당연히 서점 운영에 있어서 주(主)가 아니고 부(附)일 뿐. 일부 여행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특별한 경험을 주는 에어비앤비로써 각광받는 곳이라고 해도, 원래 이 곳의 존재 목적인 책과 커피가 팔리지 않는다면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당시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곳에 머무는 기간 동안 더 애정을 가지고 커피를 내리고, 몇 달째 미뤄져 있었던 블랙보드의 추천 도서 부분을 업데이트하고, 메뉴판을 예쁘게 꾸몄더랬다. 그리고 기존 주인 분이 결국 동문 서점을 매매하셨다는 글을 보고 우리는 우리 일인마냥 안타까워했다.
이 곳을 인수하신 분이 계속 동문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을 하실지, 아예 새로운 업종으로 탈바꿈시키실 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사진 속 추억으로만 남을 이 곳의 아련한 기억. 하지만 인연은 어디서 또 어떻게 다시 시작될지 모른다. 최근 이 곳에서 처음 인연을 맺어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만 근황을 살피고 있었던 디자이너 분을 통해 우리의 만삭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동문 서점 매각 후 캘리그래피 수업을 접고 본격적으로 사진작가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했다). 만삭 사진 후기는 다음 포스트로 올려보기로 하고, 재작년 동문 서점에서의 아련한 추억 사진을 몇 장 남기며 오늘의 글은 마무리하려고 한다.
'특별편 >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년/프랑스] 남프랑스 첫 날의 달갑지 않은 기억 (1) 렌터카 (0) | 2020.03.09 |
---|---|
[19년/프랑스] 에펠탑이 일상으로 (0) | 2020.03.04 |
[19년/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하나만 꼽으라면? (0) | 2020.02.18 |
[19년/프랑스] 파리 스냅사진의 추억. 역시 남는 건 사진. (0) | 2020.02.13 |
[19년/프랑스] 드디어 도착한 파리. 근데 너무 졸리다. (0) | 2020.02.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