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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독서는 취향껏

[책 리뷰/원서 읽기] 완벽주의를 벗어남으로써 완벽에 더욱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How To Be An Imperfectionist

by Heather :) 2020. 3. 24.

How To Be An Imperfectionist

Stephen Guise

★ 4.0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나도 완벽주의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만은 확실하다. 어렸을 때 공책에 글씨를 썼는데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페이지 전체를 찢어서 다시 썼던 기억, 학창 시절 시험을 보고 난 후 틀린 게 있을까봐 답을 맞혀보지 못했던 기억,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책 한 권을 완독 하기 전 까지는 다른 책으로 넘어가지 못했던 기억 ('이동진 독서법' 이라는 책을 읽고 난 후 이 습관은 고쳤다).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의 완벽주의가 만들어낸 버릇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완벽주의가 내심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지금의 조건에서 시작하는 힘' 이다. 나는 영어 원서로 읽었는데, 읽고 나니 개인적으로는 번역된 제목이 딱 맞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출판사의 마음이겠지. 솔직히 책의 초반은 조금 뻔했다. 완벽주의는 좋은 게 아니라는 책의 원제 ('How To Be An Imperfectionist') 에서 충분히 추론 가능할 법한 내용의 단순한 나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나의 이런 생각이 바뀌었는데, 바로 저자가 완벽주의의 깊은 곳에 숨겨진 인간 내면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 내면은 바로 '두려움 (fear)'였다. 대담하게 시도했지만 혹여나 실수를 할까 지레 겁먹는 것, 나의 행동이나 언사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 '완벽주의'라는 멋진 말로 잘못 포장되어 오히려 우리의 발전과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Perfecionism and fear are happily married." 라고 재치 있게 표현한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완벽주의의 단점 중 하나가 "binary concept", 즉 흑백논리인데 (예를 들면, 아침 조깅을 1시간 하는 것을 새해 목표로 설정해두고, 만일 30분밖에 하지 못했을 경우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를 완벽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역이용할 것을 제안하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목표만 조금 더 달성하기 쉬운 방향으로 조정하면 된다. 위에서 사용한 예시를 동일하게 적용해보면, 목표를 '아침 조깅 1시간'이 아닌, '일단 아침에 운동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삼는 것이다. 실패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운 목표로 시작해 여러 차례 달성의 기쁨을 만끽하다 보면 그것이 결국 오래 지속되는 습관으로 굳어진다는 작가의 글이 꽤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본인의 실제 경험담도 함께 소개한다. 저자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 발표를 하면 항상 망치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가 첫 책을 출간한 뒤 방송이나 라디오 출연 섭외가 이곳저곳에서 들어왔을 때에도 초대에 응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또 어김없이 망치고 올 게 뻔하니까. 그것은 저자가 무의식적으로 설정했던 목표가 '인터뷰에서 조리 있게 말 잘하기' 였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성공하기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번번이 쓴 좌절감을 경험해야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뒤 저자는 목표를 '인터뷰를 일단 하고 오기'로 수정한다. 말을 잘했건, 잘하지 못했건 일단 인터뷰를 하고 오면 성공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 뒤 작가는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무조건 수락했고, 여러 차례의 인터뷰가 연습이 되어 내공이 다져진 그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첫 인터뷰 때보다 지금 훨씬 말을 잘하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결국 완벽함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제안한 대로 완벽주의를 조금 더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면 오히려 완벽한 상태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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