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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일상이 특별해지는 기록

3월 말, 봄이 완연한 올림픽 공원의 스케치 (Feat. 사회적 거리두기)

by Heather :) 2020. 3. 29.

   일주일에 한 번 산부인과 검진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요즘이다. 지난주에는 예외적으로 출산 전 마지막 나들이 겸 이천에 다녀오긴 했지만 (이전 포스트 참고).

 

(아마도) 출산 전 마지막 서울 근교 나들이 (이천 산수유 마을/ 이코복스 커피/ 시몬스 테라스)

출산이 다가올수록 아기를 만난다는 설렘(그리고 약간의 공포)과 동시에 남편과 단둘이 보내는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3년이라는 꽤 긴 신혼 생활을 가진 뒤 가진 아기라 (그러고 보니 며칠 뒤가 결혼..

heatherblog.tistory.com

 

   예정일이 다가오니 몸에도 점점 무리가 가는 게 느껴진다. 앉았다 일어날 때 무릎이 시큰거리는 것은 기본이고, 자주 입에서 피 맛이 난다 (혈관이 확장되어 그렇다고 한다). 새벽에 깨는 주기도 잦아졌고, 꿈도 자주 꾼다. 아이가 태어나면 2시간에 한 번씩 깨기 때문에 엄마의 몸도 거기에 맞춰 적응해가는 과정이라고 하는데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드는 나에게는 30여 년 만에 맞이하는 이런 몸의 변화가 아직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병원에 갈 때마다 자궁문은 아직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뱃속에 양수도 충분해서 (= 아기가 지내기 편한 환경이라서) 아기가 나올 생각이 없어 보인단다. 어쩐지 책에서 보니 임신 후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양수가 줄어들고 움직일 공간이 좁아져 태동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여름이는 여전히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격렬히 태동 중이다.

   예정일을 넘기면 아이도 커지고, 임산부의 몸에도 무리가 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가능하면 예정일을 넘기지 않고 출산하는 것을 권장하는 것 같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서 하루에 두 시간씩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걷기 힘든 요즘이다. 그나마 가끔 오전 산부인과 진료가 끝나면 동네에 있는 석촌 호수를 한 바퀴씩 돌고 들어가곤 했는데, 며칠 전 석촌 호수가 폐쇄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벚꽃 시즌이라 사람들이 몰릴 것을 우려해 결정된 방침이었다. 폐쇄 결정은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동네에서 유일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개인적으로는 내심 아쉬웠다.

 

   게다가 남편의 재택근무도 일주일 단위로 매주 연장되고 있어, 우리 부부 모두에게 운동의 필요성이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심지어 이틀 전인 금요일은 우리의 결혼기념일. 오랜만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기분 좋은 한 끼를 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간단히 집밥을 먹고 운동 삼아 올림픽 공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곳에서 확인한 반가운 봄의 소식들. 조심스럽게, 하지만 거침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싱그러운 봄의 기운을 사진에 담아 아래와 같이 몇 장 공유해 본다. 

 

 

햇살이 과하지 않아서 좋은 날
날씨에 비해 한산했던 공원
예쁜 3인 가족. 우리의 미래 모습? :)
목련이 예쁘게 폈네
봄 기운이 물씬
예쁘다 너도
마스크로 단단히 무장한 우리

 

 

   입덧이 한창 심할 때 (작년 늦가을) 와보고 오랜만에 찾은 올림픽 공원이라 그런지 계절의 변화가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다. 몇 개의 계절이 지나갈 동안 뱃속에 여름이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초록색의 기운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좋은 봄날에 태어나는 우리 여름이 (태명이 계절감을 반영하지는 못했지만) 는 좋겠다 :)

 

   다들 마스크를 하고 있어 어두운 이 시기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물론 우리를 포함해서) 표정이 하나같이 좋아 보여 다행이었다. 조심스럽게 산책하다 돌아온 우리의 몸도, 마음도 한껏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어젯밤엔 오래간만에 한 번도 깨지 않고 꿀잠을 잤다고 한다.

 

이렇게 또 평범하지만 특별한 하루가 지나갔다.

 

 

 

 

여름이를 기다리며

2020. 3. 28 (임신 38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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