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드는 가설은 즐거움을 줄 수도 스스로를 고문할 수도 있다
건강검진일인 오늘, 검사를 기다리며 읽은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 본 이 문장에 오래 눈길이 갔다. 어릴 때는 막연히 내가 제일 잘났고 내가 제일 운이 좋다는 생각을 디폴트로 지니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인생의 쓴 맛을 맛보고 실패를 경험하며 (언제부터였을까.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시점부터였을까.) 그 쓴 맛에도 내성이 생겨 감각이 무뎌지는 경지에 도달했을 때 문득 나를 둘러싸던 그 막연한 자신감의 오로라가 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책의 저 구절을 오래 곱씹은 이유는 가설이 달라진 지금의 내가 나를 너무 고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보다 없는 영역이 더 많은데, 그간 온실 안 화초처럼 보호받으며 유약하게 살았는지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 순간 죽을 만큼 열심히 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선을 다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나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또한 알고 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내린 수 없이 많은 최선의 선택들이 이루어낸 것이라고. 내가 내린 선택들이 돌이켜보았을 때 옳았든, 옳지 않았든 그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 덧. 이 포스트를 쓰고 난 며칠 뒤 우연히 읽은 책 레이 달리오의 <원칙>에서 내 생각과 거의 흡사한 구절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전문 용어로 ‘내적 통제위 (internal locus of control)’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알았다.
나의 핵심은 단순하다.
인생이 당신을 어떤 환경으로 이끌더라도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불평하는 대신, 당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진다면 성공하고 행복해질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2022년은 내 안의 내적 통제위를 키워 조금 더 행복해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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