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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일상이 특별해지는 기록

다시, 기록.

by Heather :) 2022. 4. 25.

   미세먼지는 보통이었지만 날씨 자체는 화창하고 좋았던 어제는 시누이 언니 카페에 놀러 갔다. 남편과 언니가 아이와 놀아주는 동안 나는 야외 좌석에 자리를 잡고 정혜윤 마케터의 <오늘도 리추얼: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책 자체는 특별한 내용은 없었는데 (이렇게 느낀 것은 내가 이 작가님의 팬이라 전작 <퇴사는 여행>을 읽기도 했고, 유튜브와 뉴스레터도 구독하고 있어 이 분의 행보와 취향, 그리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외려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작가의 문체, 그리고 거기서 묻어나는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 같은 것들이었다.

   특히 와닿았던 것은 일상에서 감각을 곤두세우고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애정 어리게 지켜보며 반응해주며, 더 나아가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자세였다 (작가는 책에서 이를 “글로 사진을 찍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정말 멋진 말이다). 어릴 적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항상 사소한 것에도 크게 반응하며 웃고 떠드는 나를 보며 주변 친구들과 선배들은 "넌 참 놀리기 좋은 캐릭터야"라고 말하곤 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떠올려보자니 너무나도 생경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좋게 말하면 “의연”해졌고, 나쁘게 말하면 어떤 것에도 “심드렁”해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등 인생의 굵직굵직한 이벤트들은 거의 최근 4~5년에 걸쳐 포진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감각의 날은 점점 더 무뎌지는 느낌이다. 나이를 먹고 처한 상황이 바뀌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변화이기도 하겠지만, 지난 시간 동안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기본적으로 ‘감정을 가지면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 점은 어느 정도 맞기도 하다. 슬픈 영화를 볼 때마다 통곡하면 (예전의 내가 그랬다. 봤던 영화를 다시 봐도 그랬다.) 얼마나 감정 소모가 심할까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슬픈 영화를 보지 않는다). 살면서 쌓는 일련의 경험치에 비례해 감정의 역치도 함께 올라간 것이겠지.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작은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노력까지 중단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평소라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하루에 불과했을 어제의 순간을 온전히 기록해 보고 싶어졌다. 적당한 햇살과 바람, 자몽청에 얼그레이 티를 넣은 - 처음 보는 조합이었는데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 달고 또 쌉싸름한 음료, 그리고 그 음료를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어느새 한기가 돌아 집에서 가져온 체크 무늬 자켓을 어깨에 걸친 나,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아기의 웃음소리와 발소리까지. 그리고 이 글은 앞으로도 내 안의 감각을 조금 더 자주 깨우고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붙잡아 틈날 때마다 기록해 보겠다는 다짐, 혹은 일종의 선언 같은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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