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하는 모든 현대인들은 적어도 한 번쯤은 FOMO(Fear of Missing Out)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IT 업계에서 오랫동안 마케터 생활을 한 나 역시 이를 피해 갈 순 없었는데, 최근엔 특히 아이를 키우며 요즘 말로 "디깅 (Digging)"을 할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더욱 그 불안감이 증폭되는 것 같다. 하루에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뉴스레터와 인스타그램 피드, 스토리, 앱 푸시 메시지 등등. 이렇게 인풋이 많은 세상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하니 중심을 잡지 못하고 결국 정보의 홍수에 쓸려가 버리고 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아무런 노력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불안하니까, 증발하기 전에 어디에도 남겨두고 싶으니까 뭐라도 써두는데, 문제는 기록이 아카이빙되는 장소가 너무나도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애플 기본 노트, 노션, 에버노트, 굿노트, 보이스 레코더까지 사용하고 있는 메모 앱만 몇 개인지. 이렇게 다양한 장소에 적고 발췌한 구절과 인사이트들은 지금 와서 다시 읽어 보면 왜 적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그땐 분명히 아하 모먼트 (Aha moment)가 있어서 일부러 굳이 노트앱을 열어 타이핑하는 수고를 한 것일 텐데 말이다.
나의 최애 영드 <셜록> 에서는 마인드 팰리스 (mind palace, 한국어로는 ‘기억의 궁전’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라는 개념이 나온다. 잠시 스쳐 지나간 정보라도 어디선가 보거나 들은 적이 있을 때 깊숙한 셜록은 눈을 감고 그의 마인드 팰리스에 들어가 그 작은 기억의 실타래를 소환한다. 나도 드라마 속 셜록처럼 마인드 팰리스를 갖고 싶었다. 안그래도 기억력이 안좋아서 애를 먹는데 필요한 기억을 그때 그때 가져와서 사용할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는 셜록 홈즈 같은 천재가 아니므로 정보의 마인드 팰리스를 외부에 구축해야 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잘 구축하고 보관하느냐다. 이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해 얼마 전부터 옵시디언을 메인 기록 도구로 도입해 보려고 공부하고 있다 (공부라고 해봤자 지난 주말 관련 유튜브 영상 몇 개를 보며 따라 해본 것이 다 이기는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무한대로 확장 가능한 툴이라는데 나는 일단 메모와 메모를 연결하는 기본 기능만이라도 충실하게 사용해보고자 한다.
옵시디언에는 예전에 영문 포스트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제텔카스텐 방법론처럼 세 종류의 폴더 - fleeting notes (내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을 날 것으로 기록하는 것), literature notes (내가 보거나 읽은 것, 즉 외부의 컨텐츠로부터 얻은 지식과 감상을 나의 언어로 기록하는 것), permanent notes (문자대로, 영원히 보관할 기록. 최종 산출물) - 를 생성해 놓았다. 단순히 휘몰아치는 인풋을 저장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영감들이 쌓이고 서로 연결되고 나만의 아웃풋을 permanent note의 형태로 많이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옵시디안을 메인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미일 뿐, 노션도 계속 병행해 사용할 예정이다. 캘린더나 데이터베이스, 칸반 보드 등 실용적으로도, 시각적으로 훌륭한 노션의 템플렛은 다른 메모앱으로는 대체 불가다. 노션에는 이처럼 여러 기록들을 시각적으로 정리하고 관리하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한다. 당분간은 옵시디안과 노션, 두 노선을 탈 계획. 먹는 양을 늘리려 하지 말고, 우선 나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잘 파악하고 꼭꼭 잘 씹어 먹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의 짧은 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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