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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일상이 특별해지는 기록

폭염, 그리고 씨솔트 카라멜 콜드브루

by Heather :) 2023. 8. 6.

   학창 시절 지리 수업의 한 단원에서는 각 지역별 지형의 특징에 대해 다뤘다. 다른 지역들은 이미 기억 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지만 내가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설명만큼은 또렷이 기억나는데, 분지라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어렸을 때는 이 사실이 꽤나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매년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조금씩 더한 더위와 추위를 겪으며 살고 있다니. 가만히 있어도 날씨에 대한 경험치가 올라간 것 같아 괜히 우쭐했다. 몇 년 전 “대프리카”라는 말이 유행했을 땐 이미 서울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지 10년 가까이 지난 뒤였지만 ‘역시 대구는 대구지.‘ 하며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젠 다 옛말이다.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이 유례없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흐르는 더위에 에어컨은 24시간 풀가동, 미디어에서도 연일 기후 변화에 대해 보도한다. 잼버리 조기 퇴영 등 사회적 이슈와도 연결된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그 악명 높은(?) 대구에 살면서도 에어컨을 켜는 날은 손에 꼽았었는데, 이제는 에어컨 없이는 단 하루도 생활하기 어려워졌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날씨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 지역별 지리적 특성이 구분되는 나라라는 설명은 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쯤이면 더 이상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폭염으로 인해 기차가 천천히 운행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번에도 연착이다.

 

   본가에 머무는 지난 며칠간은 달달한 음료로 위안을 찾았다. 그중 최근에 내가 꽂힌 음료는 스타벅스에서 이번에 새로 나온 씨솔트 카라멜 콜드브루. 원래 단 음료, 특히 단 커피는 질색하는 나인데 연이은 폭염에 입맛도 바뀐 모양이다. 빨대로 첫 한 모금 쭉 들이키고 나면 윽 너무 달잖아?! 싶다가도 결국 바닥이 보일 때까지 멈출 수 없다. 당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 금세 기력이 충전되는 느낌이다. (칼로리에 대한 죄책감에 시럽을 정량보다 줄여 주문한 적도 있는데 그랬더니 짠맛이 너무 강해져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그 이후부터는 무조건 오리지널 레시피로 주문한다.) 육아로 온종일 집 안에서만 지내는 동생에게 매일 커피를 배달해주며 착한 언니 노릇을 하겠다는 자기 합리화도 아주 적절했다.

지난주 스타벅스 주문 내역. 동생은 돌체 라떼, 나는 씨솔트 카라멜 콜드 브루만 마셨다. 그야말로 외골수 자매다.

 

   하지만 일상으로 복귀하는 오늘부터는 이 달콤한 유혹과도 작별을 고한다. 이 한 잔이 내게 건넬 수 있는 위안은 기껏해야 20분 남짓. 폭염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이렇게 계속 마셨다간 열사병보다 당뇨가 먼저 찾아올 것 같다. 점점 깃털같이 가벼워지는 지갑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핸드 드립의 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무더위'하면 이 커피가, 그 달콤쌉싸름함이 진하게 기억될 것 같다. 한여름의 소울 푸드, 아니 소울 드링크이자 나의 일탈이었던 이 커피와도 마지막을 고하는 만큼 이 지난한 폭염도 어서 끝이 나면 좋겠다. 에어컨 바람 대신 청량한 가을 바람이 그립다.
 

안녕, 나의 소울 드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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