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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일상이 특별해지는 기록

위염을 동반한 숙취 끝에, 다시 건강한 일상으로.

by Heather :) 2023. 11. 5.

   평소에 잔병치레를 잘 하진 않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심하게 앓는 편이다. 작년엔 코로나가 그랬고, 올해는 이번주가 딱 그랬다. 심지어 이번엔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내가 자초한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 어린이집을 통해 알고 지내게 된 학부모님의 초대를 받아 집에 갔다가 양주(발렌타인 21년 산이라고 했다. 찾아보니 무척 비싼 술이었구나.)를 거나하게 마신 것이다. 평소에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특히 양주를 마신 날은 인생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주량을 잘 알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분명히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마지막에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섰는데,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부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남편이 나를 거의 들쳐 업다시피 해서 집으로 돌아왔고 그 이후에는 기억이 없다.
 
   보통 술을 마시고 나서도 다음날이 되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양주 탓인지, 나이 탓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그러지 못했다. 다음날 오후 3시가 될 때까지도 어지럼증에 계속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고, 오후부터 앉을 수 있게 되자 그때부터는 음식을 입에 대는 족족 토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아이와 일정이 있어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비워주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집에서 혼자 변기와의 사투를 벌이다 거의 탈진한 채로 일요일이 지나갔다. 30여 년 인생에서 처음 경험한 지독하고 긴 숙취였다.

다행히 아이는 내가 없어도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하다.


 
   다행히 숙취는 하루 만에 괜찮아졌지만 이번엔 위가 문제였다. 속이 한 번 탈이 나니 밥을 먹을 때마다 체했다. 결국 내과에서 위장약을 처방받아야 했다. 약을 먹는 동안은 죽만 먹으라는 의사 선생님의 신신당부도 있었다. 그렇게 마치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삼시 세끼를 죽으로만 연명하는 생활이 며칠간 이어졌다. 몸이 아프니 무기력과 우울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미라클 모닝, 아침마다 마시는 ABC 주스, 요가, 업무 전 내리는 커피 한 잔, 독서 등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루틴으로 구성된 나의 세계가 철저히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정도(程度)를 지킨다고, 나는 노는 것도 서툴어 몸을 망가뜨렸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단 하루의 일탈 치고는 꽤 비싼 값을 치른 셈이다.

오대수에게 짜장면이 있다면 나에게는 죽이 있다.


 
   일주일 내내 골골거리다 다시 주말이 되었다. 아직도 죽을 먹고 있지만 다행히 약은 더이상 챙겨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상태가 호전되었다. 지난 일주일간 고생한 몸이 이 지긋지긋한 위장염의 끝을 알리듯 볼 한 쪽에 도장(여드름 같기도 하고, 물집 같기도 한 붉은 자국)을 남겼다. 남편은 고맙게도 나보고 쉬라며 주말동안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가주었다. 아무도 없는 이 고요한 집에서 동요가 아닌 음악을 들으며 밀린 집안일을 하고,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평온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잃어버린 지난주를 보상받은 기분이 들어 뿌듯함이 차올랐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건강한 습관들과 소소한 행복들로 일상을 채워나가야지. 리셋!

별 거 없지만 그래서 소중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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