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른쪽 눈 밑에는 자그마한 혹이 있다. 사실 '혹'이라고 부르기에는 이 친구한테 미안할 정도로 크기가 작긴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대체할 단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잘 보이진 않지만 한 번 보이기 시작하면 꽤 신경이 쓰일 정도의 존재감은 있는 혹. 언뜻 보면 작은 물집 같기도 하고, 여드름 같기도 하고, 눈물(?) 같기도 한 이 정체불명의 혹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대학생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종종 눈에 다래끼가 나곤 했는데, 어느 날 또 다래끼라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눈 아래에 생겼고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제거 시도를 아예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어느 날은 갑자기 거울을 보다가 너무 거슬려 동네 피부과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혹이 눈 바로 밑에 있어 제거하기엔 너무 위험하다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 이대로 사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내가 봐도 이 혹은 내 눈과 너무 붙어 있는 게 문제였다. 미용을 위해 시력을 감수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깔끔히 포기하고 잊어버린 채 또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지난달 친정에 내려간 김에 동생 집에 놀러 갔는데 동생이 갑자기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눈 밑에 뭐가 났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진짜 뭐가 새롭게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혹을 보고 말한 것이었다. 그때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째, 10년 전부터 있었는데 동생아, 나에게 관심을 좀 가져주지 않으련? 그리고 둘째, 티가 잘 안 난다고 생각했는데 이 혹은 다른 사람이 봐도 꽤 거슬릴 정도구나. 그날을 계기로 다시 신경이 확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주에 드디어 제거했다! 동네 피부과 대신 강남의 대형 피부과에서. 처음 상담하러 갔을 때 원장님도 위치를 보시고는 난감해 하시며 안과에 가보라고 권하셨다. 하지만 내가 매우 실망하자 한번 시도해 보자고 하셨다. '낭종'이라는 정식 명칭도 그날 처음 들었다. 시술 자체는 매우 간단했다. 점이나 사마귀를 뺄 때 쓰는 레이저와 동일한 CO2 레이저를 썼는데, 간호사께서 레이저를 하기 전 눈에 검은색 렌즈 같은 것을 끼워 주셨다. 보통 아이 써마지 시술을 할 때 쓰는 시력 보호대 같은 것이란다. 이런 멋진 도구가 있었다니, 역시 인간의 진보는 한계가 없구나. 그렇게 감탄을 하는 중에 몇 번 지지직 하더니 끝. 눈 밑에는 이제 낭종 대신 점 같은 딱지가 앉았다.
시술 후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지만 이미 대만족 중이다. 진작에 좀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제거할 걸. 피부과나 시술에 항상 심드렁한 남편도 이번만큼은 잘했다고 말해 주었다. 작은 낭종이지만 네 인상에 꽤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 거라고. 10년간 은근히, 하지만 지속적으로 거슬렸던 존재가 사라지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새해에는 뭔가 더 잘 풀릴 것 같은 기대감도 생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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