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차 토요일에는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다. 원래 정해둔 일정도 딱히 없었지만 비 온 날에 갈만한 곳을 찾다가 (조금 뻔한 선택이지만) 아쿠아 플라넷에 가기로 했다. 아기가 있는 부모들은 다 여기로 모인 것 같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가는 곳마다 복작복작해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동선 가장 마지막에 있던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하는 수조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멋지긴 했다.
여름이가 졸린지 관람 막바지부터 찡찡거리는 바람에 3시에 예정되어 있던 쇼는 못 보고 발길을 돌렸다 (쇼를 보러 가는 대기줄이 너무 길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다). 제주에 와서 모처럼 관광지다운 관광지를 경험한 우리는 이 날 조금 지쳤던 것 같다. 그럼에도 바로 집으로 가기에는 왠지 아쉬워 지도상 집 가는 길에 있던 카페아오오에 들렀다. 이 정도로 유명한 핫플인지는 몰랐는데 (물론 비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이곳도 좌석이 꽉꽉 차 있었다. 아쉽지만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어느 중년 부부께서 나가려던 참이었다며 감사하게도 자리를 비켜 주셨다. 또 그 자리가 하필 명당 중 명당인 오션뷰였다는.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뷰 한 번 보며 비바람에 서늘해진 몸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다음날인 일요일엔 다행히 날이 개었지만 어제 비가 온 영향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 있었고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더위와 모기와의 사투였는데 갑자기 겨울 같이 매서운 가을이 찾아왔다. 이 날은 포도 미술관을 랜드마크로 찍어두고 근처 어디를 둘러볼까 찾다 새별오름을 가기로 했다. 재작년 태교여행 때 뱃속의 여름이와 함께 올랐던 곳. 그런데 이렇게 경사가 높았었던가. 만삭일 때도 잘 올라갔었는데 왜 이렇게 힘든 것인가. 여름이는 꽤 씩씩하게 올라갔지만 여름이가 날아갈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 고지를 조금 앞두고 다시 돌아 내려와야 했다. 그래도 괜찮아. 다시 올 이유가 생겼으니까. 여름아, 새별오름은 조금 더 커서 다시 오자.
다음으로 우리의 주 목적지였던 포도 뮤지엄. 공간과 전시 자체는 정말 좋았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명확했고 이를 표현하는 방식도 신선했다. 하지만 여름이는 이곳을 무서워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전시 주제가 워낙 묵직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무섭게 생긴 사람들의 조각상과 그림이 한 점도 아니라 아주 많이 전시되어 있었으니까. 여름이의 우는 소리에 마음이 급해져 후다닥 보고 나와야 했다.
오히려 전시장보다 더 오래 머물렀던 뮤지엄 내 카페. 실내라 바람이 없으니 햇살 덕분에 꽤 따뜻한 날씨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풍경도 마치 작품 중 하나처럼 느껴졌다.
다이나믹한 주말을 보내고 3주 차 평일은 평범한 일상들의 연속이었다 (남편에게는 아니었을지도). 나는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고, 남편은 주로 여름이와 함께 밖에 나갔다. 같은 곳에서 우리는 다른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3주 차에 접어드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3주 차에는 외식도 더 자주 하고, 5일 중 이틀은 카페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아래는 그렇게 소소하게 일하고 먹고 마시고 했던 나의 일상 조각들.
한 달이면 꽤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짧다. 그래도 10월에 대체 휴일에 백신 휴가까지 있어서 부지런히 잘 다녔다. 그리고 다음주인 마지막주 금요일은 회사 휴가를 내었다. 마지막까지 아쉬움 없이 잘 즐기다 육지로 돌아가야겠다.
- 부쩍 추워진 10월의 어느날 제주 남원읍 위미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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