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주에서의 일정을 마지막으로 내일 점심 비행기로 육지로 떠난다. 처음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결정했을 때 한 달이란 시간은 충분히 길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살아보니 한 달은 여행자처럼 지내기에는 길고, 현지인처럼 살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현지인처럼 힘 빼고 여유롭게 둘러보기로 했다. 첫 코스는 동네 산책. 지난번 차를 타고 가다가 집 앞에 피어 있던 노란 꽃나무를 배경으로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을 발견하고 우리도 찍어야지 생각했다. 포토 스팟은 멀리 있지 않았구나.
사진을 몇 장 찍고 셋이서 동네를 여유롭게 걸었다. 걸을 때마다 느끼지만 이곳 위미리는 정말 예쁜 동네다. 복잡한 관광지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사실 그래서 더 좋다) 찬찬히 뜯어보면 그 매력이 더욱 돋보이는. 제주에 도착한 다음날 여름이가 목감기에 걸려 급하게 방문한 동네 병원과 약국도, 두 번이나 갔던 밥집도, 큐레이션이 좋았던 서점도 다시 지나가며 눈에 꾹꾹 담아 두었다.
한남 시험림은 세 번의 예약 끝에 가게 된 곳이다. 경쟁률이 치열해서가 아니라 이상하게 상황이 받쳐주지 않았다. 처음 예약한 날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아쿠아 플라넷으로 일정을 변경했고 (3주 차 포스트 참고), 두 번째 예약한 지난주 토요일에는 남편이 갑자기 아파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있어야 했다. 어쩌면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로 옮겨진 것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있어야 하니까. 너무나 한적해서 숲 전체를 전세 낸 것 같았다. 걷는 내내 정말 멋진 마무리다 라는 생각을 했다.
4주 차에 다녀왔던 곳, 한 달간 살아보며 좋았던 곳들도 앞으로도 차차 포스팅해볼 예정.
+. 첫 주 포스팅에 초록색 귤 사진을 올렸는데 이제 보이는 대부분의 귤밭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한 달이란 이런 시간이구나. 풋풋함을 맛있게 바꾸는 그런 시간.
++. 숙소에 매일같이 찾아오던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처음 이 아이를 봤을 땐 삐쩍 말라 있었고 사람에 대한 경계도 심했는데 삶은 계란과 우유를 주기 시작하고, 이후에는 생선과 고양이 간식을 사서 주면서 신뢰를 얻었는지 언제부턴가 숙소에 인기척이 있으면 항상 찾아와 배를 벌러덩 까며 애교를 부렸다. 잘 거둬 먹여서인지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꽤 살이 올랐다 (사실 정상 체중보다 조금 더 비대해진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없어도 잘 지내야 할 텐데. 우리는 네 생각이 자주 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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