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부터 31일까지.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달간의 제주살기 프로젝트 시작. 그리고 벌써 10월 5일인 오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한 달이면 충분히 길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다가 정신 차리면 집에 돌아갈 시간이겠어. 아쉬운 마음에 틈날 때마다 짧게라도 기록해 보기로 한다.
(제주 한달 살기를 결심한 계기는 아래 포스트를 참고 ▼)
우여곡절 끝에 (우여곡절이라 함은 아기와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는데 지하철이 처음이라 낯선지 울고 불고 난리가 나서 결국 중간에 내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사치(?)를 부렸다) 제주 공항에 내려 무사히 탁송된 차를 맞이했다. 5박은 시어머니와 함께 여행하기로 해서 비행기 시간을 일부러 맞췄고, 소형차에 네 식구에 한가득 짐까지 겨우 욱여넣고 또 한 시간이 걸려 숙소에 도착.
숙소는 남원의 위미리라는 조그만 항구 마을에 위치한 복층의 타운하우스다. 이 곳에서 장기 계약을 하신 기존 세입자 분과 전대차 계약을 통해 들어오게 되었는데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청소 업체를 따로 부르셨다고 하더니 정말 새 집 같은 컨디션이었다. 첫인상부터 대만족.
집 근처 하나로마트에서 이것저것 장을 보고 시어머니께서 싸오신 햇반과 각종 반찬들로 밥을 떼우니 (어머님 사랑합니다..!) 금세 밖이 어둑어둑해졌다. 최근 아기가 잠투정이 심해 한동안 계속 유모차를 끌고 밤마실을 나가 재우고 돌아오곤 했는데 오늘도 급한 대로 아기를 안고 집 앞의 귤밭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고 돌아왔다.
하지만 이 때 찬 바람을 너무 많이 쐰 걸까. 새벽에 아기의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아침이 되니 목이 심하게 부어 물을 마시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서둘러 가까운 병원을 검색해 오픈 시간에 맞춰 갔다. 내과, 외과, 가정의학과와 더불어 소아과도 함께 진료하는 차로 5분 거리의 동네 병원. 물리치료를 받으러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잠시 대기한 후 진료를 받았는데 상태가 심각한지 바로 항생제를 처방해 주셨다.
독한 항생제의 힘인지 아기의 상태는 급속도로 좋아졌다. 그래도 우리는 조심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에겐 한 달의 시간이 있으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여유롭게 돌아다녔다. 여러 장소를 도장 찍기 하듯이 다녀오기보다 한 곳에서 오래 머무는 전략을 택했고 그래서 더 좋았다. 아래는 지난 5일간의 기록 (사진 위주로).
테라로사 서귀포점. 단순히 집 근처에 있어 다녀온 곳. 워낙 유명한 카페이기도 하고, 본점은 강릉에 있어 "제주에서 굳이..?" 라는 생각에 지난 무수한 제주 여행에서 한 번도 일정에 포함하지 않은 곳. 그런데 이게 왠 걸? 생각보다 정말 좋았다.
일정 중 시어머님의 생신이 있어 방문한 티나 케이크. 전화로 당일 예약이 가능한 홀케이크 종류를 확인했고, 당근 케이크와 무화과 케이크라는 답변을 받았다. 제주에 왔으니 당근 케이크, 너로 정했다.
제주에 온 지 4일차 되던 날에는 절물 자연 휴양림과 아침 미소 목장을 방문했다. 휴양림 내에 있던 평상에 자리를 잡고 누워 피톤치드를 맡으며 반나절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아침 미소 목장은 소 우유 주기, 간식 주기 같은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 대부분이 우리처럼 아기가 있는 방문객들이었는데 정작 아기는 좋아했으나 개인적으로 농장 안에 있던 동물들이 안쓰러웠다.
다음날 근처 (라고 하기엔 걸어서 편도 20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들를 겸 아침 산책. 동네에 귤밭이 참 많았다. 아직은 초록초록한게 맛있게 익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겨울까지 무럭무럭 자라렴.
점심을 먹고 느즈막히 오설록으로 향했다. 어머님이 재작년 제주도 여행 때 다녀오셨는데 좋았다고 추천해 주신 곳이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해서 일단 유명한 곳은 피하고 보는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도 테라로사와 마찬가지로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유명한 오는정 김밥을 먹었다. 수년 전, 딱 한 번 전화 예약에 성공해 먹어봤는데 최근 예약 방식이 바뀌었다고 한다. 전화 예약은 더 이상 받지 않고 방문 예약만 가능. 김밥을 한 번 먹으려면 두 번은 무조건 방문해야 하는 것이다. 혹시나 취소분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찾아갔는데 역시나 그런 행운은 없었고, 자연스레 다음날로 예약해 찾으러 갔다.
김밥 하나를 입에 넣자마자 '그래, 이 맛이었어!' 했다. 하지만 유명세 대비 다소 평범하다는 느낌 (생각해보니 예전에 처음 먹었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튀긴 유부가 김밥 사이사이에 들어가 바삭한 식감을 주는데, 그 맛은 튀김우동 컵라면과 흡사하다.
두서없이 기록용으로 적어 내려 가는데도 적다 보니 한참이 걸렸다. 다행히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주말에 대체 연휴까지 있어 잘 놀고 또 잘 쉬었다. 오늘은 제주에서의 근무 첫날이라 남편과 시어머님, 그리고 아기는 나가고 혼자 집에 남아 일을 했다. 요 며칠 잘 쉬어서인지, 아니면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업무 효율도 마구마구 올라가는 느낌이다. 하긴 이 풍경을 곁에 두고 일을 하면 업무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금세 풀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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