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Day 3: 레보드프로방스 → 아비뇽 → 아를
남프랑스에서의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장작 이틀에 걸쳐 남프랑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으니, 오늘은 본격적으로 서쪽의 대표 도시인 아비뇽을 구경하기로 했다. 여행 기간 중 틈틈이 인스타그램에 프랑스 사진을 올리고 있었는데, 파리에서 유학을 했던 후배로부터 내 인스타그램을 보고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근황을 주고받다가 후배가 나의 프랑스 여행 코스를 듣더니 남프랑스에서 괜찮은 마을 몇 군데를 추천해줬는데 그중 하나가 레보드프로방스였다. 지도로 검색해보니 마침 우리 숙소가 있는 아를과 아비뇽의 중간 지점에 있어 아비뇽에 들르기 전 가볍게 둘러보기로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제와 다르게 (덕분에 루흐마항에서 마을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 그 나름대로 좋았지만) 아주 청명한 날씨였다.
레보드프로방스 (Les Baux-de-Provence)
지도에서도 알 수 있지만 레보드프로방스는 지대가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다. 오르막길을 한참 달리다 도로가의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입구로 걸어 올라갔다. 19세기에 유명한 채석장이기도 했던 이곳은 길이며 건물이며 모든 건축물이 돌로 지어진 매력적인 중세 마을이다. 현대에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채석장을 '빛의 채석장'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로 탈바꿈하여 개장해 최근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파리에서 '빛의 아틀리에' 전시를 보고 정말 좋았던 기억이 있어 (이전 포스트 참고) 여기도 가볼까 했으나 가장 좋았던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할 것 같아서, 다르게 말하면 가장 좋았던 경험에 순위를 매기고 싶지 않아서 마을만 둘러보기로 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제는 레스토랑과 카페와 기념품샵으로 변신한 건물들을 보며 골목길을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주변 전망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정상에 도착한다. 남프랑스 자체만으로 파리와 다르게 높은 건물이 없어 어디를 가든 답답한 느낌은 없지만, 이곳에 올라오니 정말 숨통이 확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오늘따라 날씨는 왜 이렇게 좋은 건지.
'빛의 채석장' 전시를 보지 않고 마을만 여유롭게 둘러본다면 1시간이면 충분하다. 남프랑스에 마을만 족히 몇십 개는 될 텐데 가는 곳마다 일률적인 느낌 없이 그곳 고유의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게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벌써 남프랑스 일정의 반이 지나갔다는 것이 믿기 힘들다. 한 달 정도는 있어야 남프랑스의 구석구석을 볼 수 있을 듯 싶다. 이곳에 다시 올 이유를 만들어주는 개성 넘치는 프로방스들.
아비뇽 (Avignon)
다음 도시인 아비뇽으로 이동했다. 여유롭게 움직이다 보니 점심시간을 살짝 넘겼는데 (2~3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글 지도로 검색한 레스토랑에 가니 우려했던 대로 식사 시간이 지나 커피와 디저트류만 판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찾은 여러 레스토랑이 점심 시간 이후와 저녁 시간 이전에는 카페로 전환한다). 하지만 친절하신 매니저분께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근처의 다른 레스토랑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곳이 바로 La Terrasse By HE 라는 곳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니 야외에 있는 루프탑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일반적인 브런치 메뉴를 판매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중 가장 맛있어 보이는 두 메뉴와 음료를 시켰는데 오랜만에 보는 초록 초록한 건강한 메뉴들이라 둘 다 흡입하듯이 먹었다. 음식뿐 아니라 뷰 맛집이기도 한 이곳은 건물 자체는 낮지만 아비뇽의 전경이 한 눈에 잘 들어온다.
아비뇽 교황청 (Palasis des Papes)
거리 구석 구석을 걷고 또 걸으니 어느새 아비뇽 중심부에 위치한 교황청에 도착했다. 역사, 종교에 대해 무지하지만 높고 곧게 뻗어진 고딕풍의 건물만으로 그 웅장함과 위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성당 내부에 들어갔고, (야매) 천주교인 남편은 그곳에서 짧게 기도를 드렸다. 성당 안에는 작은 기념품샵이 있었는데 결혼식 때 주례를 해주신 신부님께 드릴 작은 선물도 구매했다.
오를로주 광장 (Place de l'Horloge)
오를로즈 광장에 도착하니 야외 카페들이 즐비해 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잠시 당 충전을 하고 다시 아비뇽의 구석구석을 걸어본다.
생 배네제 다리 (Pont St Benezet)
로쉐 데 돔 (Rocher De Doms)
사실 아비뇽에 오기 전까지는 이곳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지금껏 우리 부부가 여행할 때마다 큰 도심보다 작은 마을을 선호했기 때문에 아비뇽도 그냥 그저 규모가 큰 지방의 상업 도시 정도로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소도 아비뇽이 아닌 아를로 구했고, 아비뇽은 이 날 짧게 둘러보고 바로 아를로 이동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비뇽에 도착하자마자 이곳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도시지만 너무 붐비지 않고, 트렌디하지만 남프랑스 특유의 매력을 잃지 않은, 이 비교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덜 붐비는 파리의 소호 같은 느낌이었다. 아비뇽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 머물렀고, 또 하필 우리가 이틀간 머문 숙소 또한 너무나 좋았기에 (이전 포스트 참고) 이후 아를 일정은 과감히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 여유로운 저녁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후회 없는 결정이다.
저녁은 아비뇽 Jean le Gourmand 라는 곳에서 즉석 샌드위치와 주스를 테이크아웃해 숙소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먹었다. 남프랑스가 점점 좋아지는만큼 시간이 야속하게 흘러간다. 그렇게 프랑스 여행의 후반부, 그리고 남프랑스에서의 3일 차 밤이 지나갔다.
La Terrasse By HE (루프탑에서 건강한 브런치를 맛보고 싶다면)
Jean le Gourmand (즉석에서 갈아주는 신선한 과일 주스와 샌드위치가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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