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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편/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19년/프랑스] 남프랑스 여행 2일차 (발랑솔/ 루흐마항/ 아를)

by Heather :) 2020. 3. 14.
남프랑스 Day 2: 그레우레방 → 발랑솔 → 루흐마항 → 아를

 

 

   남프랑스에서의 둘째 날 아침,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일어났다. 그래 이게 내가 상상했던 남프랑스의 모습이지. 불과 전날 밤에 겪었던 천둥번개와 숙소를 찾기 위한 우리의 사투가 벌써부터 묘연하게 느껴졌다. (이전 포스트 참고) 창문을 여니 지붕 너머로 그레우레방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니스에서 아를과 아비뇽을 가기 전 잠깐 스쳐 지나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을이 아기자기하고 고즈넉해 마음에 들었다. 남프랑스에서 일정이 더 여유로웠다면 하루 이틀 정도 더 머무르는 건데. 이렇게 또 다음에 남프랑스에 와야 할 이유를 만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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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방 창문 너머로 보이던 마을 전경

 

   전 날 호스트분이 조식 시간을 물어보셔서 9시로 말씀드려 두었는데, 시간을 맞춰 1층으로 내려가니 이미 조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빵과 음료, 그리고 여자 호스트분이 직접 만드셨다는 수제잼. 간단한 식사였지만 충분했다. 테라스에서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먹는 식사인데 뭔들 맛이 없을 수 있을까. 풍경만으로 배가 차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조식을 먹으며 호스트분들이 키우시는 노견 (이름이 데인이었던 것 같다) 과 대화(?)를 하며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다.

정갈한 조식

에어비앤비 호스트 부부가 키우시던 반려견 데인

 

   사실 이 날은 라벤더로 유명한 발랑솔에 들렀다가 우리의 다음 숙소가 있는 아를에 가는 것 외에 다른 일정은 없었는데 남자 호스트분께서 아를에 가는 길에 있다며 루흐마항 (= 루르마랭) 이라는 마을을 들러볼 것을 추천해 주셨다. 여행지에서는 내가 직접 조사한 자료보다 현지인이 추천을 절대 신뢰하는 편이다. 빠르게 검색해보니 한국어로 된 검색 결과가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제2의 고향으로 삼을 만큼 사랑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 루흐마항에 가보자.

다시 한번 2층에서 내다본 전경. 속이 뻥 뚫리는 느낌.
1박이라 아쉽지만 환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발랑솔 (Valensole)

   루흐마항에 가기 전에 발랑솔에 먼저 잠깐 들르기로 했다. 발랑솔은 마을은 아니고 특정 지역의 이름인데 끝없이 펼쳐지는 라벤더 밭으로 유명하다. 남프랑스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보랏빛 라벤더 밭을 마음껏 보고 또 은은한 꽃향기를 실컷 맡으며 내 안의 모든 감각을 깨우고 싶었다. 라벤더는 6월 말에서 7월까지 제한적으로 볼 수 있는데, 우리의 여행 시기는 6월 초였으니 조금 이른 편이긴 했다. 역시 사진으로만 보던 보라색은 아니었지만, 연보랏빛을 띄는 라벤더가 빼꼼 고개를 내미며 만개를 기다리는 모습도 귀여웠다. 굳이 발랑솔로 가지 않더라도 남프랑스 곳곳을 드라이브하다 보면 라벤더 밭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도 드라이브 중간중간에 차를 세워 라벤더 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곤 했다. 

아직은 연보라빛을 뜨는 발랑솔의 라벤더 밭
만개하면 얼마나 예쁠까
드라이브 중 만난 푸릇푸릇 라벤더 밭 

 

드라이브길

 

 

루흐마항 (Lourmarin)

   전 날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의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하루 종일 흐리다 비가 내리다를 반복하더니 루흐마항에 도착하니 본격적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발랑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계곡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움직인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산책하듯 마을을 한 바퀴 돌았는데 비가 내리니 이 작은 마을에 운치를 더해주어 좋았다. 건물 곳곳에 넝쿨식물이 있던 조용하고 고풍스러웠던 마을. 마침 요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있는데 이 작은 마을이 그가 책을 집필할 때 어떤 영감을 선사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 덧. 찾아보니 '이방인'은 그가 루흐마항으로 오기 전에 출발된 것으로 보인다) 루흐마항 성을 기점으로 다시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오니 한 시간 정도 지나가 있었다. 입구에 있는 야외 카페에서 카페인 충전을 한 후 쉬엄쉬엄 아를로 향했다.

루흐마항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루흐마항의 길거리
루흐마항의 구석구석
루흐마항 성 근처 돌담길에서 장난끼 어린 나
루흐마항 성 근처의 돌담길에서 남편
루흐마항 성

 

 

아를 (Arles)

   차로 1시간 정도 더 달려 드디어 아를에 있는 우리 숙소에 도착했다. 프랑스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이곳이 우리 전체 일정에서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또 실제로도 그랬던 곳이다. 아를 중심가에서 차로 10분 거리로, 이런 곳에 과연 집이 있을까 싶은 흙길을 조심히 운전하다 보면 커다란 철제 대문이 보이고, 그 안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독립된 세계처럼 넓은 대지에 별장 같은 숙소가 위치해 있다. 파스칼이라는 이름의 안주인이 운영하시는 고풍스러운 B&B이다. 다음번에 또 남프랑스에 오게 되면, 여행 일정 내내 이 곳에서만 머물고 싶을 정도로 좋았던 곳. 남프랑스 여행을 추억하면 지금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이 숙소에 대해서는 다음에 별도 포스팅하기로 한다. 

아를에 위치한 우리의 숙소

 

   일단 방에서 짐을 풀고 아를 중심가로 차를 타고 가 저녁을 먹었다. 이내 짙은 어둠이 깔리고, 아를 시내를 설렁설렁 둘러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둘째 날이 마무리되었다. 고요하다 못해 음침하게까지 느껴졌던 아를의 밤거리. 우리도 왠지 모르게 숨죽이며 걷게 되었다. 낮에 오면 또다른 느낌일 것 같아 다음날 한번 더 오려고 했는데 숙소가 너무 좋아 우리는 숙소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결국 아를은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이 되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이 된 곳
아를 원형 경기장
론강. 늦은 밤에 가니 살짝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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