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곳, 더 소개하고 싶은 곳이 사실 참 많지만, 그중 가장 좋았던 곳들만을 선별해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 두고 싶었던 이번 제주 여행. 아마 이번 포스트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매일 다른 곳의 카페를 방문했지만, 그 중 압도적으로 좋았던 곳. 바로 한림읍에 위치한 카페 그 곶 이다. 이전 포스팅에서 소개한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책에서 처음 보고, 이 부부의 올곧은 신념이 느껴져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던 곳이다. (이전 포스트 참고)
요 몇 년간 제주가 급속도로 뜨면서 집세가 많이 올라 고충이 심하다는 내용을 책에서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역시나 불과 얼마 전 집주인과의 계약 문제로 카페 운영을 중단했다가 최근 장소를 동쪽에서 서쪽에서 이전하신 것 같았다. 이전 동쪽에 있었던 카페를 가보지 않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제주의 일반 가정집을 거의 그대로 활용해 아늑한 느낌이었다.
인스타에서도 "상업적인 촬영이나 개인 촬영은 불가능"하고, "유명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실제로 주문을 하고 내부 사진을 몇 장 찍고 있는데 여사장님께서 조용히 다가오셔서 과도한 촬영은 금하고 있다고 소곤소곤 말씀해 주셨다. 유명해지기를 원치 않는 카페라니. SNS에서 입소문을 타 떠들썩하게 사진만 찍고 가는 그런 카페가 아닌, 한 분의 손님이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오래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보를 자제하는 카페임에도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지 손님이 꽤 많아 우리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테이블이 다 찼는데, 다들 하나같이 말소리를 줄이고 커피를 마시든, 독서를 하든 본인의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서울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동네 카페를 제외하고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아니, 동네 카페도 이런 분위기는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곳에서 일기를 쓰며 생각 정리도 하고, 스터디 자료도 준비하며 알찬 시간을 보냈다.
단순히 공간의 편안함만 제공할 뿐 아니라 음료와 디저트류도 수준급이었는데, 커피는 남편분께서 직접 로스팅하시고, 빵은 아내분께서 매일 아침 굽는다고 했다. 임신 후 디카페인 커피 외에는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는 아쉽게도 차를 시켰지만, 동생한테 커피를 시키라고 강요해(?) 홀짝홀짝 뺏어마셨다 (이럴 거면 그냥 나도 커피를 시킬 걸 그랬다..). 직접 구우신 치아바타로 만든 샌드위치도 한 끼로 충분할 만큼 든든했고, 특히 그 날 준비된 오븐 초콜렛 케이크는 카페인 때문에 처음에 머뭇거리다 주문했는데, 안 먹어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꾸덕꾸덕한 초콜렛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한동안 숟가락을 내려놓지 못했다.
혼자 와서 테이블을 하나 떡하니 차지하고 있어도 눈치 보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살가운 말 한마디보다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진 곳. 오래 머물렀고, 또 오래 머물고 싶어 지는, 내가 상상한 제주와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제주 카페 그 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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