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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편/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비밀스럽고 멋스러운 공간에서 차 체험, 제주 듀블라썸

by Heather :) 2020. 1. 21.

   제주에 머무르는 10일간의 일정 중 가장 좋았던 곳 중 하나. 제주도에 있는 동안 대체로 "무계획이 계획이다"를 표방하며 여유롭게 다녔지만 일정 중 한두 번 정도는 평소에는 하지 못한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인스타에서 우연히 발견한 곳. 사실 평소 차에 대해 크게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이미 동생과 함께 쌀 베이킹 클래스를 예약해 놓은 상태라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흘러 제주도에 도착한 지 삼일째 되는 날 처음 연락을 드렸는데, 이럴 수가. 이미 원하는 시간대는 전부 마감된 상태였다. 아쉽다는 말과 함께 인스타로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니 그분이 더 안타까워하시며 어떻게든 일정을 조율해 보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짧은 대화에서부터 마음이 예쁘신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결국 서로 일정이 잘 조정되어 어렵사리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숙소로부터 1시간 남짓 차를 타고 달려 도착한 곳은 조천리의 어느 간판도 없는 평범한 농가 주택이었는데, 안에 들어가자마자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유한 분위기에 동생과 함께 탄성을 내뱉었다. 고풍스러우면서 또 세련된 오묘한 느낌. 다양한 종류의 차들이 인테리어의 일부가 되어 공간을 알차게 채우고 있었다. 마치 주인의 취향을 듬뿍 담뿍 담아 정성스레 가꾸어진 멋스러운 아틀리에로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문을 열면 신비롭고 따뜻한 공간이 펼쳐져 나도 모르게 감탄을 자아낸다.
구석구석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는 곳
사장님이 셀프 인테리어하셨다고. 이 감각은 도대체 어디서 배울 수 있는 건가요.
체험 수업이 진행된 공간

 

     흡사 영화 '마담 프루스트와 비밀정원'의 정원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체험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우리가 선택한 체험은 '찻자리 체험'으로, 두 종류의 차와, 두 종류의 다과를 맛볼 수 있는 구성이었다. 최대 정원이 5명이라고 해서 모르는 세 분과 함께 수업을 듣겠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예약하면 해당 시간대에는 그 일행만 받는다고 한다 (그 일행을 최대 5명까지만 수용 가능하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웰컴티로 제공된 천일홍차

 

   보관되어 있는 차는 대부분 직접 제주에서 채취하신 것이라고 했다. 오기 전에 알레르기나 몸 상태에 대한 주의사항을 미리 알려달라고 해서 현재 임신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내 컨디션에 맞는 차로 추천해 주셨다. 첫 번째가 장미꽃차, 두 번째가 금귤차였다. 찻주전자며 찻잔이며, 심지어 흐른 물을 닦는 천까지 너무 예뻐서 어렸을 적 소꼽놀이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간단한 다도 예절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다. 

 

장미꽃잎차
장미차와 함께 제공된 쌀 파운드 케이크
금귤차
금귤차와 함께 제공된 다진 고구마와 경단

   첫번째 차와 함께 제공된 파운드케이크도 소화에 무리가 갈까 봐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설탕 대신 사탕수수를 사용했다고. 심지어 두 번째 다과는 마치 한 폭의 예술 작품 같아 먹기 아까울 정도였는데, 꿀이 임산부에 좋지 않아 동생이 먹을 경단에는 꿀을 살짝 뿌렸고, 내가 먹을 경단에는 꿀을 뿌리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 세심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근데 나 지금까지 꿀 많이 먹었는데... 그동안 주인 잘못 만나 여러모로 혹사시킨 내 몸에, 그리고 여름이에게 미안해졌다.

   

   편안한 공간에서 오롯이 우리만을 위해 정성스레 제공되는 차와 다과 코스.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오래 머물렀는데 편하게 더 있다 가라고 말씀해주신 주인분의 마음씨도, 모닥불에 직접 구웠다며 마지막에 챙겨주신 귤도 참 따뜻했다. 너무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더불어, 제주에 다시 가면 꼭 또 한번 들르고 싶은 곳이다.

 

아무리 써도 글로는 왠지 부족해, 마지막으로 이 곳의 분위기를 담은 영상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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