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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편/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제주 열흘 살기를 위한 준비물 (+ 숙소 추천)

by Heather :) 2020. 1. 18.

   어렵게, 또 쉽게 여행지를 정했으니 (이전 포스트 참고), 이제 본격적으로 제주 열흘 살기를 위한 준비를 하기로 한다. 제주도는 대중교통이 불편해 차가 필수인데,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장롱면허 11년 차다. 다행히 남편이 못 가는 대신 최근 백수가 된 동생이 함께 해 나의 개인 운전사(?)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중간에 부모님께서도 합류하시기로 하셔서 새해는 숙소에서 친정 식구들과 함께 오붓하게 맞이하기로 했다. 

 

제주 열흘 살기를 결심하다 (Feat. 어디로 갈까?)

나의 임신 기간은 매우 교과서적인 편이다 (현재까지는).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입덧이 임신 16주 즈음부터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회사-집 만 좀비처럼 다니던 시기가 끝나고 뭐라도 먹을 수 있게 되니 삶..

heatherblog.tistory.com

   이번 여행의 컨셉은 아주 명확했다. 잘 먹고 잘 쉬기. 원래 여행을 다닐 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해 그날그날의 대략적인 동선 정도는 짜두는 편인데 (어렸을 때는 이런 강박이 더 심해 분 단위로 계획을 짜곤 했었다), 제주도는 이 전에도 많이 가본 곳이기도 하고, 가는 목적도 '여행'보다는 '태교'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 계획도 짜지 않는 것이 유일한 계획이었다. 무엇보다 관광객 모드를 벗고 한번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이미 다녀온 현 시점에서 결론적으로 이 점에 있어서는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한 것 같지만). 아래는 내가 제주 열흘 살기를 위해 사전에 준비했던 대표적인 세 가지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작성된 준비물(?)이기 때문에 제주살이를 위한 현실적인 팁 (예를 들면 비행기표 싸게 구하기 같은) 을 원했다면 만족스럽지 않은 내용일 수도 있다.

 

01. 내 취향이 듬뿍 담긴 장소 사전 검색

가고 싶은 곳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제주도 지도

 

   제주살이를 결심한 이상, 하루에 외식과 카페는 한 번씩만 간다는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9박 10일동안 매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면 지출이 너무 커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SNS에서 이미 유명세를 탄 맛집이나 카페들을 하루에 몇 군데씩 찍고 돌아오는 것은 내가 생각한 제주살이의 컨셉과 맞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에 한 번, 기껏해야 여행 기간 동안 10번밖에 못 가는 카페인데 기왕이면 내 취향에 딱 맞는 곳을 찾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오고 싶었다. 나 또한 제주도민이 아니다보니 좋은 곳을 찾고 싶을 땐 주로 네이버와 인스타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검색할 때 몇 가지의 기준을 두었다.

  • 혼자 사색하거나 책 읽기 좋은 곳
  • 오래 머물러도 눈치 보이지 않는 곳
  • (필수는 아니지만 가능하면) 건물이 제주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곳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카페 중에는 (당연하지만) 북카페가 많았다. 2018년, 남편과 봄에 다녀온 제주 여행에서 우연히 알게 된 북카페 유람위드북스 에서 책을 읽다가 졸다가 하며 반나절을 보낸 기억이 정말 좋았어서 (당시의 인스타 포스팅 참고) 자연스럽게 이번에도 책방과 북카페 위주로 알아보게 되었고, 가고 싶은 곳들을 찾아 네이버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지도상 빼곡히 표시되어 있지만, 이번에 실제로 가본 곳은 손에 꼽는다. 이번엔 선택받지 못했지만 표시된 다른 곳들은 다음 제주 여행을 위해 남겨 두기로 한다.

 

 

02. 제주에 "살아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책

   나는 비록 열흘이었고, 이마저도 "살아보기"(를 표방했지만)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지만, 실제로 타지에서 와 제주도에 정착한 사람들의 이주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제주도에서의 삶은 만족스러울까에 대한 궁금증은 항상 있었던 것 같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내가 직접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삶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렇듯)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으니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을 통해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달까. 그 와중에 '제주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 (링크)' 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고, 그전에 같은 출판사인 브로드컬리에서 발간한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 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 주저 없이 선택했다.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책으로 만나는 새로운 세상

book.naver.com

 

   결론부터 말하면 책은 정말 좋았다. 제주도를 "여행"이 아니라 나처럼 "살러 가는 것"을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꽤 충분한 대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이 책에서 인터뷰한 가게들 중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을 두 곳 (카페 그 곶, 미래책방) 추려 실제 여행 기간 중에 방문하고 돌아왔다. 책에 대한 추가적인 감상은 아래 내가 완독 후 남긴 짧은 왓챠 감상평 (아래) 으로 대체하기로 한다.

책을 읽은 후 왓챠에 남긴 나의 짧은 독서평

03. 숙소, 감성과 가성비를 동시에 잡은 곳

   사실 제주 열흘 살기를 결심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숙소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외식은 하루에 한 번만 하기로 결심했으니 일단 취사가 가능한 곳이어야 했고, 교통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숙소가 관광지보다는 실제 주거 지역에 위치했으면 했다. 그리고 (앞에 카페를 검색한 조건과도 같지만) 이왕이면 현대식 건물보다는 제주 농가 주택을 개조한 곳에서 고즈넉한 제주만의 분위기를 풍기는 곳에서 묵고 싶었다. 무엇보다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닌, 이불 속에서 책도 읽고 뜨개질도 하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도 잘 수 있는 그런 곳을 원했다. 평소에 여행지 숙소를 검색할 때는 1순위는 청결도, 2순위는 가성비 정도의 기준으로 검색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이렇게 조건이 많다 보니 숙소 검색에만 2주가 넘는 시간을 썼던 것 같다. 정말 마음에 들면 1박에 25만 원은 기본으로 넘어가고 (현실적으로 숙박비로만 250만 원을 쓸 수는 없었으니), 또 조금 저렴한 숙소를 찾아보니 뭔가 위에서 열거한 조건에서 하나둘씩 부족하고. 내 취향은 나만 확실히 아는 것이니 검색을 분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혼자 머리를 싸매는 시간이 생각보다 더 길어졌다.

 

   숙소 찾기의 어려움에 대해서만 한 페이지를 쓸 수 있겠지만 (눈물을 머금고) 이 정도에서 각설하는 것으로 하고, 결론적으로 두 곳의 숙소에서 각각 7박, 2박씩 머물렀는데 정말 만족스러웠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한 곳이 서쪽, 또 다른 곳이 동쪽에 위치해 동선상으로도 완벽했다. 어렵게 어렵게 찾은 곳이라 내 집처럼 애착이 듬뿍 가는 제주도 숙소 두 곳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보롬 제주

   제주 방언으로 "바람"을 뜻하는 "보롬"을 따 "보롬 제주"라고 지은 이 숙소는 이름부터 취향 저격이었다. 제주 서쪽 한경면 한경리 작은 시골 마을에 위치한 이 숙소는 제주도 전통 가옥의 토대를 그대로 살리고 내부만 리모델링해, 제주도 전통 가옥에서 머물고 싶지만 오래된 집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다소 주저하게 되는 나같이 까탈스런(?) 사람들을 위해 딱이다.

   매일 아침 마을 이장님의 방송에 잠을 깨고 2~3일에 한번 꼴로 뒷뜰 테라스에 새들이 놀러 오는 곳이었는데,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굉장히 생경한 경험이었다. 안거리, 밖거리 모두 렌트하고 있으며, 안거리가 조금 더 넓다고 들었다 (우리는 안거리에 묵었다). 침대가 있지만 온돌 바닥이라 부모님은 뜨듯하게 지지고(?) 싶으시다며 바닥에서 주무셨다 (덕분에 침대는 내 차지).

   1박에 15만원 선이고, 에어비앤비에도 리스팅 되어 있지만 우리는 장기 숙박으로 주인분께 직접 연락을 드려 조금의 할인을 받았다. 원래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것을 지양하고자 9박 모두 이 곳에 머무르는 것을 계획했으나, 우리가 연락을 드린 시점에 마지막 1박이 이미 다른 예약자가 있어 7박만 머물게 되었다. 

보롬 제주의 안거리(좌)와 밖거리(우). 우리는 안거리에 묵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방문했지만 아직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곳곳에 남아있었다.
부족함이 없는 식기, 밥솥, 세탁기, 건조대까지 갖춘 만능 주방
이 숙소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스팟. 긴 창문을 통해 밖의 고즈넉한 풍경을 원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팟이니 다른 각도에서도 한번 더 보자.

덕천 연수원

   처음엔 보롬 제주에서 9박을 다 머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이 곳을 방문하고 난 후 여길 몰랐으면 더 아쉬울 뻔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오픈했다는 이 곳은 호텔보다는 이름대로 기업 연수원에 가까운 곳인데, 사실 단체보다는 개인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깔끔한 시설은 둘째 치고, 무엇보다 가성비가 너무나도 훌륭하다. 2인 기준 5만 원에 인원 추가 시 인당 만원인데, 무려 조식이 포함된 금액이다. 그동안 제주도에 자주 가고, 또 여러 곳에 묵어보았지만 이 정도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곳은 아직 보지 못했다.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 같은데, 이제 조금 더 입소문을 타면 예약을 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은 특히 부모님께서 만족하셨고, 앞으로 제주도에 오면 여기에서만 머물 거라고 하신다.

우리가 묵은 3층에서 내려다본 전경. 엘리베이터 외에도 3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외부 계단이 있다.

 

각 숙소의 링크는 아래와 같이 붙여 넣었으니, 혹시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신 분이 있다면 숙소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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