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분께서 작년 영국 여행 때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읽기 시작해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다 읽으셨다며 빌려주신 책 '런던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학창 시절에 세계사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그렇다고 따로 책을 찾아 공부할 만큼의 흥미 또한 없었기에 이 분야에 대해서 굉장히 무지한 편인데, 그래도 이 책은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재미있는 문체로 역사와 사견을 함께 서술하고 있어 나름 잘 읽히는 편에 속했다. 제목은 '런던 이야기'지만,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 그리고 영국이 지난 시절 세력을 뻗친 인도, 호주, 미국에 이르기까지 세계사 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되었는지 인터넷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밤을 새서 읽었던 책인 해리포터부터 시작해 천일의 스캔들 (2008), 킹스 스피치 (2010), 셜록 홈즈 (2010~2017), 그리고 최근에 빠져서 보고 있는 더 크라운 (2016~)까지, 내가 유독 좋아했던 컨텐츠 중에 영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신입사원 시절, 세미나 참석 차 영국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것도 무려 나 혼자), 내 인생 첫 유럽 방문 국가가 영국인 사실에 매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주말을 붙여 일찍 출발하기도 했고, 출장이 2주에 걸쳐져 있어 그 주 주말까지 합치면 4일의 자유 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 참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특히 당시 나의 여행 스타일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서,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여행을 좋아했다). 심지어 어느 날 저녁에는 혼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도 보러 갔다. 내가 산 티켓은 극장 맞은편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가 포함된 패키지였는데, 아무런 연고 없는 이 낯선 도시에서 혼자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 코스 요리를 먹으며 어른 코스프레를 하는 모습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피식- 웃음이 난다.
다행히 당시 지인의 누나가 영국에서 디자이너로 정착해 살고 있어 소개를 받고 이틀 정도는 그분의 가이드를 받으며 돌아다녔다. 처음 본 사이 치고는 둘이 제법 말이 잘 통해 펍에서 자정이 넘도록 남자 친구, 앞으로의 목표, 꿈 이야기를 허울 없이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막연히 해외 유학에 대한 꿈을 품고 있어, "나도 언니처럼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했었는데 다행히 3년 뒤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어 출국 전날에도 무리해 각자 일정을 마치고 만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서로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락을 주고받다 그 때 그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어졌는데, 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각자 꿈꿔왔던 인생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5년도 더 지난 일이기도 하고, 그때는 지금처럼 영국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 기억 또한 그 때 찍었던 300여 장의 사진 (그마저도 대부분은 출장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찍어두었던 프레젠테이션 자료나 경쟁사 매장 사진이다) 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이마저도 대부분 어디였는지 기억을 못 하는 곳이 많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영국의 역사나 유명한 건축물보다 어렴풋하게나마 설레고 꿈꾸던 내 20대 중반의 어리숙하지만 당찬 모습이 투영되는 곳. 언젠가 영국에 다시 한번 가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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