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시즌 1로 개봉한 '더 크라운'. 2016년이면 미국에 있을 때였는데,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한동안 계속 메인 페이지에서 트레일러를 보여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영국의 현재 왕비 (그 당시에는 이름도 몰랐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만 듣고, 단순히 왕족에 관한 이야기겠거니 하고 화려한 드레스와 액세서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겠다는 naive한 생각으로 에피소드 1을 틀었는데,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아 대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이 명작을 이렇게 하찮게 치부한 나 자신이 실망스럽군).
하지만 나는 책이든, 드라마이든 한번 시작하면 어떻게든 한번 끝까지 보려고 노력하는 쓸데없는 고집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 (나중에 'How to Be an Imperfectionist'라는 책을 읽으며 이것이 완벽주의자의 모습 중 하나이고, 이러한 나의 성향이 내게 긍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딱 끊지는 못하고 보고 싶은 컨텐츠가 딱히 없을 때, 한 시간의 지루함은 감수할 수 있을 정도의 mental capacity가 있을 때 한편 씩 찾아보곤 했다. 그러다 팀원분들과 점심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다, 팀원 중 한 분이 이 드라마가 인생 드라마라는 이야기를 했고, 평소 이 분의 취향이 나와 잘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 날 저녁, 오랜만에 한 편을 다시 틀어 보았는데 역시나 너무나 지루한 것이다.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보는 것도 아니고, 안보는 것도 아닌 채 시즌 1의 반을 보는데 한 6개월이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중반부를 기점으로 등장인물이 점차 익숙해지고, 예전에 들어본 유명한 사건 - 예를 들면, 에피소드 4에서 나온 런던 그레이트 스모그 일화 같은 - 들이 나오면서 점점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즈음부터 매 에피소드가 끝나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은 추가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는데, 등장인물이 입은 의상이나 배경 장소가 실제와 거의 비슷하게 설계되었다는 것을 알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이 드라마에 점차 빠져들기 시작해 시즌 1의 후반부 에피소드는 며칠 만에 다 보고, 지금 벌써 시즌 3의 중반부에 접어들었다 (이것도 아껴 보고 있는 중).
이 드라마는 평소에 영국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거나, 그간 빠르고 자극적인, 소위 '미국 드라마' 식의 전개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진입 장벽이 있다. 초반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익숙지 않은 입헌군주제 시스템, 그리고 우리와는 다른 로열패밀리들의 세계, 화려함과 그에 상응하는 무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적 고증이 뛰어나 (이 드라마 제작에 넷플릭스 사상 최대 금액이 투자되었다고 알고 있다), 평소에 실화에 기반한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보는 분이라면 이 드라마를 꼭 추천하고 싶다.
+ 추가 팁. '더 크라운' 더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
1. 나무위키에서 간단한 팩트 체크
2. 실제와 극 중 인물 및 의상 비교
(아래 사이트가 아니더라도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굉장히 많이 나온다)
3. '더 크라운'의 배경 시점과 관련이 있는 영화 찾아보기
- 영화 '킹스 스피치' (시점: 시즌 1 이전)
- 영화 '다이애나' (시점: 시즌 3 이후 (아마도 시즌 4나 5에서 다루어질 것 같지만))
4. 영국 왕실의 최근 일화나 스캔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시즌 3을 먼저 보고 시즌 1을 보는 것도 추천
시즌 3 에피소드별 간단 설명은 아래 뉴욕 타임스 기사 (영문)를 참고 👇
'에세이 > 일상이 특별해지는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7년 만에 갈아탄 아이패드 미니 5 사용 후기 (장단점) (0) | 2020.03.08 |
---|---|
세이브더칠드런 모자뜨기 3일만에 후다닥 완성 (0) | 2020.03.07 |
42일 간의 미라클 모닝 후기 (0) | 2020.03.05 |
코로나 바이러스. 남편도 재택 시작. 요리로 바빠진 일상.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0) | 2020.02.26 |
눈이 예쁘게 오던 날, 양평 나들이 (논두렁/ 구하우스/ 쉐즈롤) (0) | 2020.02.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