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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일상이 특별해지는 기록

세이브더칠드런 모자뜨기 3일만에 후다닥 완성

by Heather :) 2020. 3. 7.

   임신을 하고 나서 태교(는 핑계고 사실 취미로)로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뜨개질이었는데, 엄마가 손을 많이 움직이는 게 뱃속 태아의 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했던가. 여하튼 그런 것은 차치하더라도 여름이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었다. 인터넷에 '태교 뜨개질'을 검색해보니 키트도 다양하고, 오프라인 클래스도 많았다. 하지만 워낙 손재주가 없기도 하고, 불과 며칠 전까지 직장인으로 오프라인 클래스를 다닐 시간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바로 세이브더칠드런 모자뜨기.

 

   세이브더칠드런 모자뜨기는 신생아살리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년 진행되는 프로젝트성 기부 활동이다. 올해가 시즌 13이라고 하니, 벌써 10년이 넘은 명실상부 역사가 깊은 캠페인이 되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정한 판매처(GS Shop)에서 뜨개질 키트를 구입해 모자를 떠 다시 세이브칠드런에 보내는 방식인데, 완성된 모자는 구매한 금액과 함께 개발도상국의 저체중, 저체온증의 아이와 산모를 돕는 데 사용된다 (올해는 아프리카의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로 보내진다고 한다). 운 좋게 잘 사는 국가에서 태어난 덕분에 나도, 여름이도 무탈하게 지내고, 또 크고 있지만 지구 저 반대편에선 임신이 축복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콕콕 쑤셨다.

 

   사실 세이브더칠드런 모자뜨기는 오래전에 한번 해본 적이 있다 (찾아보니 무려 4년 전이다). 전 회사 과장님의 추천으로 처음 알게 되어 무작정 키트를 사보았더랬다. 하지만 사놓기만 하고 뜨는 것은 미루고 미루다, 본가에 내려갔을 때 엄마에게 SOS를 쳤다. 함께 머리를 싸매며 털실이 너덜너덜해져 작은 실로 갈라질 때까지 여러 번 풀었다 뜨다를 반복해 겨우 완성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나의 비루한 손재주는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Instagram의 Heather님: “손재주가 없어서 몇번을 풀었다가 드디어 완성! 뿌듯해 😉 두번째는 더 잘할 수 있을듯 ㅎ #세이브더칠드런 #savethechildren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캠페인 #뜨개질 #기부 #don

좋아요 16개, 댓글 5개 - Instagram의 Heather(@hm.shin)님: "손재주가 없어서 몇번을 풀었다가 드디어 완성! 뿌듯해 😉 두번째는 더 잘할 수 있을듯 ㅎ #세이브더칠드런 #savethechildren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캠페인 #뜨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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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의 아우라를 물씬 풍기는 태교 바느질 디자인을 보다가 다소 투박하고 심플한 뜨개질 모자를 봐서 그랬을까. 아니면, 한 번 해봤으니까라는 자신감에서였을까. 왠지 이번엔 지난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여름이를 위한 무엇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뱃속의 여름이에게도 나의 의도가 잘 전달되어 따뜻한 가슴을 가진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12월과 1월에 걸쳐 제주도 여행이 계획되어 있으니, 그때 집중해 뜨개질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4년 만에 키트를 주문했다. 키트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기본은 실타래 2개에 바늘(코바늘, 돗바늘)이다. 하지만 나는 친정에 바늘이 있었기에, 제주도에서 만날 때 가져와달라고 부탁해두고 실타래 3개로 구성된 키트를 구입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생각날 때 틈틈이 뜨개질을 했다. 코 만드는 법을 잊어버려 유튜브를 보며 다시 배웠는데, 신기하게도 손이 기억하는지 나중에는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카페에서도 하고,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TV를 보면서도 하고, 새벽 일찍 눈이 떠진 날에도 뜨개질을 했다. 실타래가 줄어들고, 코바늘에 걸린 실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보며 뿌듯했다.

 

코 뜨기
카페 '사계생활' 본부장실에서 뜨개질 (이때만 해도 배가 귀엽게 나왔었네)
제주의 새벽 어느날. 제법 길게 떠졌다.

 

   그렇게 제주에서 모자 하나의 2/3 정도를 완성하고 서울로 돌아와 다시 바쁜 일상으로 복귀했다. 시간적 여유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반만 완성된 모자, 그리고 남은 두 개의 실타래가 여름이의 침대에 한동안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뜨개질의 존재를 잠시 잊어버린 채 어느새 3월이 되었다.

 

   출산 휴가에 돌입한 첫날,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책을 읽고, 요가를 했다. 나름 알찬 하루였다고 자부하며 잠이 들려던 찰나, 여름이의 침대에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뜨개질 키트에 눈이 갔다. 그래 2~3단만 뜨고 자자. 오랜만에 키트를 꺼내 들어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다. 졸릴 즈음 마지막 코까지 마무리하고 집어넣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자 수거 봉투에 있는 안내문을 보았다. 지난번에 얼핏 봤을 때 3월 중으로만 보내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뿔싸, 마지막 수거일이 3월 10일?! 다음 주 화요일이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좋은 취지로 시작했는데 끝을 맺지 못하면 후원 단체에도, 그리고 여름이에게도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적어도 3개 중에 2개는 완성해 보내고 싶었다. 그리하여 태교고 뭐고, 3일간의 치열한 뜨개질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모자는 제주도에서 거의 완성했기 때문에 금방 마무리되었다. 그 와중에 또 같은 모자를 뜨고 싶지는 않아 두 번째 모자는 조금 더 난이도가 있는, 일명 "요정 모자"를 만들기로 했다.

 

요정 모자. 바쁜 와중에 나름 실 색상도 바꿔가며 떴다.
어려운 부분은 동영상 강좌를 보고 또 보고

 

 

   손가락에도 알이 배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첫날 2~3시간을 내리 뜨개질을 했더니 다음 날 아침 손가락 마디마디가 뻐근하게 아파왔다. 친정에서 공수해온(?) 바늘 중, 마무리할 때 꼭 필요한 돗바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남편에서 급하게 사 오라고 시켰다. 유튜브에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올려준 튜토리얼이 있어 어려운 부분은 몇 번이고 다시 보며 떠 나갔다. 마지막 요정모자의 하이라이트인 양갈래 땋기도 끝나고 그렇게 불과 3일 만에 두 번째 모자도 완성되었다. 완성된 모자들을 가볍게 손세탁하고 드라이기로 말려 포장까지 마치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제 오후에 우편으로 부쳤으니 아마 다음 주까지는 너끈히 도착할 것이다.

 

가장 어려웠던 마무리
요정 모자는 마무리 부분을 잘못해 풀었다가 다시 해야 했다.
짜잔! 완성본
깨끗이 씻어 키트 구매 시 동봉된 포장 봉투에 담으면 준비 완료.

 

   아직 모자 하나를 더 짤 실이 남았지만 이건 내년을 기약하기로 한다. 이렇게 "태교"나 "취미"라고 하기엔 굉장히 intense하고, 순전히 "기부"라고 하기엔 치열했던 세이브더칠드런 신생아 모자뜨기가 3일 만에 후다닥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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