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개최하는 연중 가장 큰 행사를 목전에 앞두고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몇 주간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에도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에 틈틈이 일을 했다. 입 안에는 진작에 혓바늘이 돋았고 입술에는 물집이 잡혔다. 줄곧 대기업에만 있다가 스타트업으로 오니 항시 일손과 시간이 부족하다 (분명 작년의 나는 대기업으로 이직했었는데 올초 회사가 독립해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스타트업 직원이 되어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임져야 하는 업무의 범위도 넓어졌을뿐더러 내 업무를 백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그 부담감과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작년 이맘땐 입사한지 한 달 만에 출장지에서 발표를 하는 기록을 세웠는데 (아래 포스트 참고), 올해는 행사 준비도 맡게 됨과 동시에 행사 마지막날 closing 발표도 나에게 주어졌다. (심지어 작년처럼 영어 발표다. 여긴 한국인데.) 도저히 이 모든 걸 시간 내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직속 상사한테 제발 발표만큼은 빼주면 안 되겠냐고 슬쩍 던져보았는데 먹히지 않았다. 네가 이 행사의 기획자이자 프로젝트 리더인데 네가 발표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냐고, 너의 지난 수고를 널리 알리고 이 발표를 사람들이 너를 기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으라고 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지난 목요일부터 이틀간 압축적으로 슬라이드를 만들었다. 아니, 찍어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영문 스크립트는 ChatGPT의 도움을 빌렸다. 연습 없이도 유창하게 발표할 수 있는 타고난 연설가면 좋으련만, 대중 앞에만 서면 어김없이 머릿속이 하얘져 하고 싶은 말은 어느 정도 숙지하는 게 편하다. 이번 주말에는 야외로 가족 나들이를 갔는데 아이가 남편이랑 노는 동안 혼자 그늘막에서 스크립트를 외웠다. 일요일은 오늘은 한창 현장 세팅 중이신 에이전시 담당자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아 만사 제치고 대응을 해야 했다. 잘하고 있는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검증할 여유도 없이 바쁜 요즘. 어서 이 시기가 끝나고 한숨 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나고 나면 나도 이전보다 한 뼘 정도 더 성장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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