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이직 과정에 대한 포스트를 먼저 작성하고 싶었는데 오늘이 사실상 마지막 근무일이었기에 괜히 센티해져서 새벽에 쓰는 글. 이 감정을 날 것 그대로 적어보고 싶었다. 어디론가 증발하기 전에 빠르게 (같은 맥락에서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에도 짧은 소감을 남겼다).
지난 10년간 두 개의 회사를 다녔고 이번이 두 번째 퇴사다. 첫 퇴사는 그간 모은 돈으로 미국 유학을 간다고 호기롭게 감행했고 (지금 하라면 절대 못했을 것 같다. 과거의 나를 힘껏 안아주고 싶다.), 석사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구한 직장을 4년 반 만에 떠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회사의 퇴사일은 아직도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 평소보다 일찍 업무를 마무리하고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 혼자 뭐가 그리 서러운지 펑펑 울었다. 애인에게 비참하게 차인 것 마냥. 굳이 따지자면 찬 쪽은 나인데.
하지만 이번에는 꽤 덤덤하다. 실제 퇴사일은 다음 주 월요일이라 (내일부터 3일간 아기 어린이집 방학이라 휴가를 쓸 예정이다) 아직 실감이 덜 나는 것일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 그때보다 마음의 경도(硬度)가 조금 더 단단해진 덕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지막 근무일이라는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일이 바빴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 신규로 팀에 입사하신 분이 계셔 (이 분의 입사일에 맞춰 당초 7월 말로 예정된 내 퇴사일도 조금 미뤄졌다) 몇 시간에 걸친 인수인계를 마치고 Jira 티켓을 새로운 담당자분들께 할당하고, 아이맥 반납 신청을 하고 나니 마지막 날임에도 업무 시간을 꽉꽉 채웠다. 컴퓨터 포맷을 마치고 최종적으로 업무를 종료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끝난 거 맞아?'.
마지막까지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냐고 걱정 어린 시선으로 조언해 주시던 동료분들께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라고,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겠다고 웃으며 대답했는데 막상 끝을 체감하기 전에 이미 끝난 느낌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 노력을 새 회사와 산업군에 대해 공부하는데 썼다면 더 효율적이었을 텐데 라는 후회와 걱정도 갑자기 확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나 어쩌지...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새로 시작도 하기 전에 번아웃만 되지 말자, 입사 전까지는 무조건 쉬자 - 를 스스로에게 백 번씩 되내었다. 끝이 났지만 이 끝의 여운을 뒤늦게 음미(?)해보고 있는 중이다. 아마 며칠은 더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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