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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꿈은 일잘러입니다

요즘의 고민. 직장이 인생의 목적이 되면 안 되는데.

by Heather :) 2021. 10. 18.

사실 여러 복잡한 심경을 안고 제주에 왔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회사의 리크루터로부터 지난달 인터뷰 제의를 받았고 (그간 동일한 회사의 리크루터들과 소위 폰 스크리닝이라고 부르는 전화 통화를 여러 차례 했지만 실제 인터뷰 제의를 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원 부서의 팀 리더 분과 1차 인터뷰를 했으나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어버버 하다 보기 좋게 말아먹었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대로 탈락.

지난 수 년간 몇십 번을 지원한 끝에 겨우 얻어낸 기회인데 이렇게 날려 먹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폰 스크리닝까지는 말 그대로 스크리닝 단계였으나, 1차 인터뷰부터는 공식 채용 프로세스라 나의 답변과 인터뷰이의 피드백이 기록에 남을 테고 이는 향후 이 회사에 지원할 때 큰 불이익으로 작용할 것이다. 머리로는 예상한 결과였으나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간 나는 왜 이토록 이 회사에 목매고 있었을까? ‘회사의 인지도’, '커리어 성장' 같은, 거의 클리셰 수준의 두루뭉술한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금세 깨달았다. 이것은 내가 이 회사로 이직을 하고 싶은, 아니, 굳이 이직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어떤 행동을 취하기 위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내 인생은 ‘회사’가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회사는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실현시켜주는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좀 더 그럴듯한 이유를 (아직) 떠올리지 못했다면, 혹은 내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꼭 이 회사 안에서 달성하지 않아도 된다면 탈락의 데미지는 지금보다 조금 덜 받아도 되지 않을까? 회사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니까. 

지난 주말에 다녀온 제주 포도뮤지엄



제주에 온 지 어느덧 3주차에 접어들었다. 사실 복직한 뒤 업무도 많이 바뀌었고, 매너리즘을 타파하고자 시도한 이직도 잘 안 풀린 이 상황에서 정리되지 않은 여러 생각의 실타래들을 꽤 오래 속으로 품고만 있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 생활이 온전한 휴식이 아니다 보니 머릿속 복잡한 생각을 여러 각도에서 반추하고 정리해 하나의 결론으로 도출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며 새롭게 주어진 듯한 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든 여름이 옆에서 글을 쓰는 이 시간을 포함해) 어떤 것들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정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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