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드라마 <길모어 걸스>에 나오는 로렐라이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로렐라이와 로리 같은 모녀 관계를 갖고 싶었다. 주위에서 도무지 엄마와 딸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친구처럼 지내며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주말마다 함께 정크푸드를 먹으며 영화를 보고, 각자 연애 상담도 하고(?), 서로의 결정을 전적으로 믿으며 응원해 주는 쿨한 관계.
나이를 먹으며 현실 감각이 생기고 실제로 아이를 키워보니 로렐라이 같은 엄마가 되려면 일단 내 아이가 로리처럼 알아서 바르게 자라주어야 하는데, 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생애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적절한 가이드와 코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적으로 안다. 그러다 최근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신 하버드 출신 모녀 편을 보며 내가 되고 싶은 엄마상이 조금 더 구체화된 것 같다.
이제는 아이와 친구 같은 관계보다 선후배 혹은 멘토-멘티 같은 관계가 되고 싶다. 아이가 기쁘거나 힘들 때 언제나 곁에서 감정적인 지지대를 제공하되, 아이와 함께 침잠했다 떠올랐다를 반복하기보다는 항상 나 스스로를 먼저 구할 “여력”이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비행기 탑승 매뉴얼에서도 사고 발생 시 보호자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가이드하고 있는 것처럼.) 시련과 고난이 있어도 그것들을 묵묵히 마주하며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할 수 없는 “한계”보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먼저 알려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이자 인생의 선배로서 이런 길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되,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강요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곧 아이의 네 돌을 앞둔 지금까지의 나는 그저 우당탕탕 허둥지둥 엄마였다. 별 것 아닌 것에 화내고 또 후회하고를 반복하기 일쑤. 그래도 현재는 희망사항에 가깝지만 이렇게 적고 되뇌다 보면 내가 바라는 엄마상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지 않을까? 아이와 함께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싶다. 엄마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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