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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독서는 취향껏

[책 리뷰]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임솔아 / 오독오독 북클럽

by Heather :) 2024. 7. 30.

 

 
   책의 첫 장을 펼치고 나서 다 읽는 데까지 딱 사흘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는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이는 개인적으로 소설 감상평을 쓰는 걸 어려워하기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는 개인적인 상황이 더 크게 작용했다.

   최근 남편과 심하게 다퉜다. 음악 취향이 비슷하지만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연결고리가 되어 주었지만) 그것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이 상극에 가까운 우리. 어쩌다 보니 결혼 생활 8년째, 연애까지 합하면 15년 가까이 함께 했지만 싸우고 난 뒤에는 언제나 이별을 상상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직장인이 사직서를 항상 가슴에 품고 있듯이 냉랭했던 며칠간 나도 혼자 상상 속에서 남편에게 모진 말들을 내뱉은 뒤 ("너 인생 그렇게 살지 마", "나 없이 얼마나 잘 사는지 보자" 등 실제로 말하려고 하면 꽤나 유치하게 느껴지는 문장들이다.) 이혼 도장을 몇 번이고 찍었다. 

   마음이 힘든 그때 이 소설이 회복의 실마리를 주었다. 우리 모두 크고 작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화영, 우주, 보라, 정수처럼. 그리고 석현, 선미, 누리처럼. 우리는 모두 우리가 지나온 길이 인도한 그 어딘가에 있다. 그 길은 너무나도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해서 우리는 때로 길을 잃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허무의 구렁텅이에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멋진 인연을 마주하기도 하고, 또 그것이 혼자서는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길로 이끌 때도 있다. 

   한 명은 항상 스스로 공부해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었지만, 다른 한 명은 대학 입시 원서도 부모님과 상의 없이 낼 정도로 반항적인 아들이었다. 한 명은 갈등을 극도로 싫어해 갈등 상황을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하지만, 다른 한 명은 이를 똑바로 직시하고 해결하려고 한다. 한 명은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힘쓰는 반면, 다른 한 명은 단순한 문제도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한다. 전자는 나, 후자는 남편의 이야기다.

   서로 다른 환경과 경험 속에서 수십 년을 보낸 우리가 어느 날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이렇게도 다른 우리가 지금은 같은 길을 함께 걸어 나가고 있다. 그 과정이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마냥 평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의 상상대로, 그리고 문자 그대로 우리에게도 "각자의 길"을 걷게 될 그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책에서 소개된 과거와 현재의 단편적인 부분 외에도 모든 순간에 마치 “그곳에 존재한” 것만 같았던 이 허구의 인물들을 서서히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했던 내 마음 한 구석에도 이 사람을 더 잘 이해해보고 싶다는 작은 의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책에서 '삶은 내가 목표한 것을 성취하는 과정이 아니라 뜻하지 않은 일들을 겪으며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라는 구절을 읽고 메모앱에 기록해 두었다. 소설 속 인물들도, 현실의 우리도 모두 경험하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임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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