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74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내린 최선의 선택들의 교집합 인간이 만드는 가설은 즐거움을 줄 수도 스스로를 고문할 수도 있다 건강검진일인 오늘, 검사를 기다리며 읽은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 본 이 문장에 오래 눈길이 갔다. 어릴 때는 막연히 내가 제일 잘났고 내가 제일 운이 좋다는 생각을 디폴트로 지니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인생의 쓴 맛을 맛보고 실패를 경험하며 (언제부터였을까.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시점부터였을까.) 그 쓴 맛에도 내성이 생겨 감각이 무뎌지는 경지에 도달했을 때 문득 나를 둘러싸던 그 막연한 자신감의 오로라가 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책의 저 구절을 오래 곱씹은 이유는 가설이 달라진 지금의 내가 나를 너무 고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보다 없는 영역이 더 많은데.. 2021. 11. 17. 요즘의 고민. 직장이 인생의 목적이 되면 안 되는데. 사실 여러 복잡한 심경을 안고 제주에 왔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회사의 리크루터로부터 지난달 인터뷰 제의를 받았고 (그간 동일한 회사의 리크루터들과 소위 폰 스크리닝이라고 부르는 전화 통화를 여러 차례 했지만 실제 인터뷰 제의를 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원 부서의 팀 리더 분과 1차 인터뷰를 했으나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어버버 하다 보기 좋게 말아먹었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대로 탈락. 지난 수 년간 몇십 번을 지원한 끝에 겨우 얻어낸 기회인데 이렇게 날려 먹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폰 스크리닝까지는 말 그대로 스크리닝 단계였으나, 1차 인터뷰부터는 공식 채용 프로세스라 나의 답변과 인터뷰이의 피드백이 기록에 남을 테고 이는 향후 이 회사에 지원할 때 큰 불이익으로 작용할 것이다. 머리로는 예.. 2021. 10. 18. [책 리뷰] 도미토리 북클럽, 그리고 정말로 '책, 이게 뭐라고' 작년 호기롭게 시작한 북클럽은 다행히 잘 유지되고 있다. 대학 시절 함께 기숙사에 살던 동기 5명이 모여 결성한 북클럽인데, 한 명씩 돌아가며 책을 선정하고 질문을 준비해 매월 온라인 북클럽을 진행하는 형식이다. 첫 타자였던 나는 '인스파이어드'를 선정했는데 (리뷰는 아래 참고) 벌써 돌고 돌아 1월에 다시 내 차례가 돌아왔다. 그래서 선정한 책이 바로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 [책 리뷰] 요즘 가장 핫한 직종 PM에 대한 모든 것, 인스파이어드 (Feat. 북클럽 개설) 휴직 기간 동안 마음 맞는 친구들과 틈틈이 작은 프로젝트를 기획해 실행해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북클럽.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게 주요 골자인데, 나의 아 heatherblog.tisto.. 2021. 6. 1. [책 리뷰] 호기롭던 그 때 그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 민음사★ 3.5 주위를 둘러보면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베스트셀러 작가이니 주변에 이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 나와 죽이 잘 맞았던 회사 동료에서부터 팔로우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까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나는 스스로가 "좀 뒤쳐지는 애", "말이 안 통할 것 같은 애" 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누군가가 이 유명한 작가의 책을 어떻게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읽지 "못한"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발간된 책이 너무 많아서 어떤 책을 입문서로 삼아야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럼 왜 '노르웨이의 숲'을 첫 번째 책으로 선택했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제목을.. 2021. 1. 6. [책 리뷰] 이제 진짜 데이터에 기반한 진실을 마주해야할 때, 팩트풀니스 팩트풀니스한스 로슬링 / 김영사★ 5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오상진 아나운서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였다. 추천사의 내용이 지금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올해 읽은 책 중 베스트”라는 표현이 있었던 같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그가 이토록 극찬을 했을까, 당시에는 궁금해만 하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 우연찮게 기회가 되어 읽게 되었는데 저자의 이름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검색해보니 저자인 한스 로슬링은 대학원 시절, 내가 한창 데이터에 기반한 마케팅에 꽂혔을 때 우연히 본 영상에서 ‘이 어려운 내용을 이렇게 쉽게 시각화하여 전달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그 한스 로슬링이었다. (그 때 그 영상을 보고 너무 감명을 받아 별도로 운영 중인 영어 블로그에도 기록해 두었을 정도였다).. 2020. 12. 14. 아무튼 비건까진 아니더라도, 플렉시테리언 (+ 요즘 먹은 채식 식단)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지만 또 그만큼 오랜 기간 모른 척했던 이슈가 있다. 바로 동물 복지, 그리고 비건. 대학생 때부터 환경 관련 공모전을 비롯해 기후변화 홍보대사로 활동을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첫 사회생활을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분야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익숙한 주제지만, 또 그 장벽이 너무 높아 실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굳이 예전부터 실천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면 가능한 햄이나 소시지 같은 가공육을 피하는 것. 이 결정도 대단한 사회적 신념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건강에 대한 관심과 우려에서 시작한 것이고, 이마저도 미국 유학 시절에는 잠시 내려놓고 지냈다. 베이컨이나 소시지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를 찾기가 .. 2020. 9. 10. [책 리뷰] 요즘 가장 핫한 직종 PM에 대한 모든 것, 인스파이어드 (Feat. 북클럽 개설) 휴직 기간 동안 마음 맞는 친구들과 틈틈이 작은 프로젝트를 기획해 실행해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북클럽.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게 주요 골자인데, 나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으므로 내가 첫 발제자를 맡게 되었다. 평소에 책을 안 읽는 편은 아니지만, 혼자 읽으면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들을 골라 같이 읽고 생각을 공유하며 소화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고른 책이 바로 마티 케이건의 ‘인스파이어드’. 우연한 기회로 대부분 PM들로 구성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조인하게 되었는데, 그 채팅방에서 자주 회자되는 책이라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엄두가 나지 않던 찰나 선택하게 되었다. 북클럽은 유명한 독서모임인 트레바리의 형식을 차용해 모임 전 50.. 2020. 9. 1. 요즘은 왜 아이와 관련된 사연을 보면 눈물부터 나는지 (+ 아동 정기 후원)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정말 "another level"의 경험이다. 모든 경험이 직접 겪어봐야 잘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부모가 되는 일이란 더욱더 그런 것 같다. 예전에 주변에서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은 친구들과 출산 및 육아 이야기를 할 때 그 대화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철저한 나의 오산이었다. 막상 내 아이가 생기니 '그때 그 친구가 했던 말이 이런 의미였어?'라는 생각을 하며 한 번 더 곱씹어보게 될 뿐만 아니라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이 모든 것을 먼저 경험한 그 친구에게 경외감(?) 같은 것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 뿐인가. 친구들의 출산을 축하한답시고 센스 없는 선물들을 보내며 - 예를 들면, 여름에 태어난 아기였는데 가을 옷을 선물하는 등 - 뿌듯해 했던 과거의 나 자신도 부.. 2020. 8. 11. 4개월 차 아기 엄마. 지난 백일의 이야기.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몇 달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출산할 때만 해도 아직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봄이었는데,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지 벌써 몇 주째 이어지는 장마에 계절의 변화가 사뭇 새삼스럽다. 휴직 후 출산까지 한 달간 열심히였던 블로그도 4개월 전 조리원에서 작성한, 우울감을 마구 발산하고 있는 (그래서 지금은 읽기 부끄러운) 포스트에서 멈추어 있다. 그래도 그간 작성했던 글들을 통해 유입되는지 방문자 수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었다. 애초에 혼자 두서없이 기록하고 있었고, 또 아무 예고 없이 몇 달간 방치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나의 하루가 전적으로 아이의 바이오리듬에 맞춰 돌아가다보니 블로그처럼 긴 호흡의 글은 쓰기 어려웠지만,.. 2020. 8. 10. 조리원 일기 (2) 모유가 나오지 않아서 임신 때부터 나는 당연하게 완모(완전 모유수유의 줄임말로, ‘완분(완전 분유수유)’과는 반대말)를 꿈꿨다. 1년을 꽉 채우진 못하더라도 몇 개월은 꼭 모유수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abies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모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영상을 보고 그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출산 당일, 병실로 옮겨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생아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부터 수유콜을 받을 것인지를 묻는 전화였다. 12시간이 넘는 진통으로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음에도 굳이 욕심내 받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7시 무렵 부름을 받고(?) 힘겹게 도착한 신생아실. 분만 직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여름이었다. 양수에 얼굴이 팅팅 불어 마치 외계인 같았던 첫인상과 달.. 2020. 4. 14. 조리원 일기 (1) 우울감으로 점철된 나날들 (산후우울증, 몸살, 훗배앓이) 조리원에 들어온 지 오늘로 딱 1주 차가 되었다. "조리원 천국"이라는 말은 안타깝게도 나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물론 조리원 퇴소 후 혼자 집안일하고 밤낮없이 아이까지 보는 생활이 지금보다 절대 낫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임신부터 출산까지 모든 게 순조로웠던 것이 무색하게 출산을 기점으로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산후우울증. 출산 후 80% 이상의 산모들이 한 번씩 경험한다고 하는데 임신과 출산 모두 교과서적인 편에 속했던 내 몸이 이번이라고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조리원 첫날, 낯설고 생소한 이 곳의 시스템에 적응할 새도 없이 모자동실 시간이 찾아왔다 (내가 있는 조리원에는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의 의무 모자동실 시간이 있다). 허둥지둥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쩌다 보니 의무 시간보다.. 2020. 4. 8. 출산 일기 (38주+6일 / 자연분만 / 르봐이예 분만) 오랜만의 블로그. 3월 마지막 날, 예정일은 일주일 가량 앞두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이를 만났다. 출산휴가에 들어간 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분만 후 2박 3일간 병원에서 지내다 퇴원하고 오늘은 조리원 3일차.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벌써 출산의 고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완전히 잊어버리기 전에 기억을 소환해 작성해보는 출산일기 (참고로 분만 진행 시각은 남편이 양가에 카톡으로 생중계한 시간을 기준으로 작성하였다). 20.03.30 03:00 변의를 느끼며 일어났다. 임신 기간 중 새벽에 깨는건 비일비재해 익숙했으나 변의를 느끼며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기에 조금 의아했다. 06:00 평소와 다름없이 유튜브를 보며 아침 요가를 하고 전날 미리 만들어둔 감자 계란 스프레드를 식빵에 발라 .. 2020. 4. 4. 이전 1 2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