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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76

요가, 지난 8개월의 수련 기록. 햄스트링 부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 수련을 다시 시작한 지도 어느덧 8개월이 다 되어간다. 2023년 가장 열과 성을 다한 게 요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요가에 진심이었다. 매 수련이 소중하고 특별해서 지난 수련 과정을 정리하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지 몇 주가 지났음에도 좀처럼 마무리하지 못했었다. 블로그에 '초보 요기니'라는 카테고리를 개설했다. 하나의 포스트에 모든 것을 담겠다는 생각이 writer's block의 주범인 것 같아서. 수련에 대한 기록은 앞으로도 차차 이어나가기로 하며, 이번 글에서는 어떻게 다시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수련 중 겪은 부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요즘의 마음가짐에 대해 썼다. 새벽 요가를 다시 시작하다 재작년 제주도에서 지내는 한 .. 2023. 8. 22.
폭염, 그리고 씨솔트 카라멜 콜드브루 학창 시절 지리 수업의 한 단원에서는 각 지역별 지형의 특징에 대해 다뤘다. 다른 지역들은 이미 기억 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지만 내가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설명만큼은 또렷이 기억나는데, 분지라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어렸을 때는 이 사실이 꽤나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매년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조금씩 더한 더위와 추위를 겪으며 살고 있다니. 가만히 있어도 날씨에 대한 경험치가 올라간 것 같아 괜히 우쭐했다. 몇 년 전 “대프리카”라는 말이 유행했을 땐 이미 서울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지 10년 가까이 지난 뒤였지만 ‘역시 대구는 대구지.‘ 하며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젠 다 옛말이다.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이 유례없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가만히 있어.. 2023. 8. 6.
둘째에 대한 고민 동생이 얼마 전 아기를 낳았다. 매일 아기 사진과 영상을 보내주는데 그 치명적인 귀여움에 하루에도 몇 번씩 돌려보고 있다. 출산 전 동생네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육아용품을 대부분 물려줘서 예전에 여름이가 입던 옷이 사진과 영상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우리 여름이도 이렇게 작았던 때가 있었는데’ 하며 흐뭇한 생각에 잠기곤 한다. * 참고로 여름이는 태명이다. 여름이가 태어난 지도 어느덧 3년 하고 4개월이 지났다. 어린이집에서는 벌써 둘째를 낳은 부모들도 꽤 보이고, 여름이 친구가 이미 둘째인 경우도 많다. 어릴 때부터 아기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여동생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는 결혼하기도 훨씬 전부터 아이는 낳으면 무조건 둘이라고 생각했다. 뼛속까지 계획형 인간이었던 시절이 있었는.. 2023. 7. 31.
낙관적 허무주의 (Optimistic Nihilism) 한 달쯤 전,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한 계정에서 추천받아 이 영상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더 찾아서 보았고, 나중에는 생각날 때마다 볼 수 있게 저장해 두었다. (5분 남짓한 영상이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도 한 번쯤 보시길 강력히 추천한다) 이 영상을 보고 나면 영겁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은 얼마나 사소하고 보잘것없는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최근 읽고 있는 와 에서도 비슷한 메세지를 함의하고 있어서 그런지 최근 이런 생각이 내 안에서 더욱 증폭되었다.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는 망각하며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작은 것에도 아등바등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작은 것이 작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 삼킬 듯한 파도처럼 다가온다. 지.. 2023. 7. 21.
인풋이 넘치는 시대에 아웃풋을 챙기기 위해 SNS를 하는 모든 현대인들은 적어도 한 번쯤은 FOMO(Fear of Missing Out)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IT 업계에서 오랫동안 마케터 생활을 한 나 역시 이를 피해 갈 순 없었는데, 최근엔 특히 아이를 키우며 요즘 말로 "디깅 (Digging)"을 할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더욱 그 불안감이 증폭되는 것 같다. 하루에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뉴스레터와 인스타그램 피드, 스토리, 앱 푸시 메시지 등등. 이렇게 인풋이 많은 세상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하니 중심을 잡지 못하고 결국 정보의 홍수에 쓸려가 버리고 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아무런 노력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불안하니까, 증발하기 전에 어디에도 남겨두고 싶으니까 뭐라도 써두는데, 문제는 기록이 아카이빙되는 장소가 너.. 2023. 5. 15.
비록 지금 잠깐 길을 잃은 느낌이더라도 (feat. 수습 통과) 어느덧 새 회사에 온 지도 3개월이 되었다. 모든 이들의 첫 3개월(보통 회사에서 수습 기간으로 책정하는 시기)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정신없이, 그리고 밀도 높은 시간을 보냈다. 입사한 지 1개월 반 만에 출장을 갔고, 또 출장에서 발표까지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영어로. 싱가포르 7박 9일 출장. 정리되지 않은 생각 뭉텅이들. 일주일간의 싱가포르 출장 일정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호텔에서의 마지막 날 밤에 쓰는 글. 정제되지 않은, 날 것에 가까운 생각들을 뭉텅뭉텅 뱉어내는 수준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럼 heatherblog.tistory.com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동료들과 일하며 기존에 해왔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을 배운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 과정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아니,.. 2022. 11. 10.
싱가포르 7박 9일 출장. 정리되지 않은 생각 뭉텅이들. 일주일간의 싱가포르 출장 일정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호텔에서의 마지막 날 밤에 쓰는 글. 정제되지 않은, 날 것에 가까운 생각들을 뭉텅뭉텅 뱉어내는 수준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기록해보려고 한다. # 1. 삼촌 가족과 주말 나들이 주말 중 하루는 삼촌 가족을 만났다. 삼촌네 가족은 20년 전에 싱가포르로 넘어가 사업을 시작해 멋지게 정착하셨다. 삼촌, 숙모, 그리고 현재 싱가포르 군대에 복무 중인 (경찰서에서 복무 중이라 집에서 출퇴근을 한다고 했다) 작은 사촌 동생도 만났다. 하루 종일 멋지고 좋은 것만 보여 주시려고 여기저기 데리고 가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나도 이제 어느덧 10년 차 회사원이라 돈을 버는데도 삼촌 눈에는 아직 내가 10살 꼬마로 보이는지 하루 종일 돈을 한 푼도 못쓰게.. 2022. 9. 30.
[책 리뷰] 섬세한 작가와 섬세한 번역가의 시너지, '명랑한 은둔자' 명랑한 은둔자캐럴라인 냅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4.5 이번 제천 여행 때 가져간 책 두 권 중 한 권이자, 북클럽에서 이 달의 책으로 선정된 책. 원래는 이 책을 사지 않으려고 했다. 구입하려고 책을 검색하다가 작가의 소개를 봤는데 살면서 여러 중독에 빠졌고, 평생 미혼이었다가 40대의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나와 너무나도 거리가 먼 사람 같았다. 이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내가 과연 일말의 공감이라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제천 여행 이야기는 이전 포스트를 참고 ⬇️) 퇴사와 입사 사이. 제천 여행. 포레스트 리솜에서 여름휴가.지난주 아기 어린이집 방학 기간에 맞춰 짧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회사 휴양소에 응모했는데 운 좋게 당첨된 것이다 (퇴사 전에 한 번이.. 2022. 8. 12.
퇴사. 마지막 근무일의 소회. 원래는 이직 과정에 대한 포스트를 먼저 작성하고 싶었는데 오늘이 사실상 마지막 근무일이었기에 괜히 센티해져서 새벽에 쓰는 글. 이 감정을 날 것 그대로 적어보고 싶었다. 어디론가 증발하기 전에 빠르게 (같은 맥락에서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에도 짧은 소감을 남겼다). 로그인 • Instagram www.instagram.com 지난 10년간 두 개의 회사를 다녔고 이번이 두 번째 퇴사다. 첫 퇴사는 그간 모은 돈으로 미국 유학을 간다고 호기롭게 감행했고 (지금 하라면 절대 못했을 것 같다. 과거의 나를 힘껏 안아주고 싶다.), 석사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구한 직장을 4년 반 만에 떠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회사의 퇴사일은 아직도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 평소보다 일찍 업무를 마무리하고 인사를 .. 2022. 8. 3.
나는 절대 우리 엄마같은 엄마는 될 수 없을거야. 최근 엄마가 26년 동안 다니신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셨다. 그날도 업무에 치여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가 까맣고 잊고 있었는데 엄마가 가족 카톡방에 보내신 (동료들로부터 받은) 꽃다발 사진을 보고 아차차 했다. 서둘러 축하한다고 답장을 보내니 아쉽고 허전하다는 우리 엄마. 제삼자의 눈으로 봐도 매우 고되고 고생스러운 일이라 가족 모두 입 모아 이제 제발 그만두라고 말한 지 10년 정도 된 것 같은데, 결국 정년을 채우시는 것을 보며 역시 엄마는 엄마구나 싶었다. 남편이 종종 내게 "나는 너의 존버(?)가 부럽다"라고 말하는데, 이건 진정한 존버의 대마왕인 우리 엄마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나에게 아주 티끌만큼이나 존버 정신이 있다면 이건 전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거다. 한 직장에서만 무려 26년이라니.. 2022. 7. 22.
어느 링글 수업에서 나눈 멋진 대화 (feat. 죽음의 수용소에서) 복직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회사 지원으로 화상영어 플랫폼 링글 (Ringle)에 등록해 수업을 듣고 있다. 튜터들은 대부분 현재 영어권 국가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인데 간혹 직장인이나 본인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만나곤 한다. 며칠 전에는 David라는 이름을 가진, 독일 혼혈의 영국인 친구와 수업을 했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며 JLPT 자격증 2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급하게 예약한 수업이라 (링글에는 '24시간 이내 수업'이라는 메뉴가 있다) 별도의 정해진 주제 없이 프리토킹을 할 생각으로 들어갔고 그간 수업 경험상 각자의 직업, 사는 곳 등 기본적인 소개만 해도 수업 시간인 40분은 훌쩍 채우기 때문에 또 의례 그런 가벼운 이야기를 하다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 2022. 5. 27.
제주도 새벽 요가의 기억 작년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다녀오며 꼭 따로 포스팅해야지 하며 미뤄두었던 이야기가 있다. 제주에서 뭐가 가장 좋았어?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이야기. 바로 요가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가 두 돌이 넘은 요즘은 간헐적으로 미라클 모닝을 하고 있으나, 작년까지만 해도 아기가 새벽에 두어 번씩은 꼭 깼기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엄두를 못 냈었다 (총 수면시간은 7~8시간을 채웠음에도 새벽에 여러 번 깨면 하루 종일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다). 그런 내가 제주에서 아침 6시에 시작하는 요가 수업을 등록한 것이었다. 아마 이보다 더 늦은 수업이 있었다면 주저 없이 그걸 택했겠지만 이 요가원의 평일 수업은 아침 6시와 저녁 7시 40분, 딱 두 번밖에 없었다. 회사의 기본 퇴근 시.. 2022. 5. 16.